[임준수 '스크린 에세이'] '언더 더 선' .. 자연과 인간의 원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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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이 환상적일 수 있다면 바로 "언더 더 선"같은 화면을 두고 하는 말 일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황금빛 밀밭,한가로운 시골길 등 하나 하나가 모두 한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첫 무대는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고요한 숲속.
한마리의 개가 물위로 고개를 내밀고 유유히 연못을 건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개 헤엄이라는 말이 있지만 네발 동물이 이렇듯 유연하게 수영을 하는 재주가 있는 줄야...
북유럽에서 만든 영화는 일반적으로 난해하고 따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웨덴 산이 그렇다.
그런 선입관은 베르히만 같은 선배감독들이 심은 것이 사실이다.
그 후예랄 수 있는 젊은 감독(콜린 너털리)의 작품이고 보면 대중적 흥미를 기대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언더 더 선"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
따분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머리를 굴리면서 봐야 할 난해한 요소는 없다.
전편에 걸쳐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과 감미로운 선율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인공부터 순박한 농부가 나와 부담이 없다.
일자무식에 마흔이 가깝도록 총각신세를 면치못한 홀아비.
우람한 체구와 우직한 성품 때문에 농사일은 잘 하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다.
재산이래야 집 한채와 자동차가 고작인데 그것이 가정부 구인광고에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호조건"이다.
그런 농부의 집에 매력적인 가정부가 들어오면서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서정적 애정물이 거의 그렇듯 남녀의 교감속도가 너무 느려 젊은 관객들에겐 하품이 나올 만 하다.
그 대표사례는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
만일 뜸들이는 키스장면의 콘테스트를 벌인다면 단연 금메달감이다.
새 천년에 이런 19세기식 사랑이 등장하다니 60여년전에 나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성앞에서 가슴 설레인 사춘기를 겪은 경험으로 보면 정겹다.
이 영화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도 40고개까지 간직된 중년의 순박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수놓는 자연의 환상적 아름다움도 주인공의 때묻지 않은 영혼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두차례 "태양아래(언더 더 선) 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시종 인간과 자연의 원시미를 펼치는데,여기엔 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번 불붙은 남녀의 정념은 무섭게 열을 뿜어 대 더듬거리던 첫 키스의 주인공들이 어디로 갔나 싶다.
눈부신 풍광이 먹구름에 덮이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질펀한 관능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도 원시적 자연과 인간의 본능을 연계시키는 에로물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편집위원 jsrim@ ked.co.kr
따사로운 햇살,황금빛 밀밭,한가로운 시골길 등 하나 하나가 모두 한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첫 무대는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고요한 숲속.
한마리의 개가 물위로 고개를 내밀고 유유히 연못을 건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개 헤엄이라는 말이 있지만 네발 동물이 이렇듯 유연하게 수영을 하는 재주가 있는 줄야...
북유럽에서 만든 영화는 일반적으로 난해하고 따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웨덴 산이 그렇다.
그런 선입관은 베르히만 같은 선배감독들이 심은 것이 사실이다.
그 후예랄 수 있는 젊은 감독(콜린 너털리)의 작품이고 보면 대중적 흥미를 기대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언더 더 선"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
따분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머리를 굴리면서 봐야 할 난해한 요소는 없다.
전편에 걸쳐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과 감미로운 선율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인공부터 순박한 농부가 나와 부담이 없다.
일자무식에 마흔이 가깝도록 총각신세를 면치못한 홀아비.
우람한 체구와 우직한 성품 때문에 농사일은 잘 하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다.
재산이래야 집 한채와 자동차가 고작인데 그것이 가정부 구인광고에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호조건"이다.
그런 농부의 집에 매력적인 가정부가 들어오면서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서정적 애정물이 거의 그렇듯 남녀의 교감속도가 너무 느려 젊은 관객들에겐 하품이 나올 만 하다.
그 대표사례는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
만일 뜸들이는 키스장면의 콘테스트를 벌인다면 단연 금메달감이다.
새 천년에 이런 19세기식 사랑이 등장하다니 60여년전에 나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성앞에서 가슴 설레인 사춘기를 겪은 경험으로 보면 정겹다.
이 영화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도 40고개까지 간직된 중년의 순박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수놓는 자연의 환상적 아름다움도 주인공의 때묻지 않은 영혼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두차례 "태양아래(언더 더 선) 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시종 인간과 자연의 원시미를 펼치는데,여기엔 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번 불붙은 남녀의 정념은 무섭게 열을 뿜어 대 더듬거리던 첫 키스의 주인공들이 어디로 갔나 싶다.
눈부신 풍광이 먹구름에 덮이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질펀한 관능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도 원시적 자연과 인간의 본능을 연계시키는 에로물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편집위원 jsrim@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