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하진 < 소설가 >

백석이라는 시인이 있다.

좋은 시인이지만 불행히도 시보다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로 세간에 먼저 알려진 사람이다.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장소인 백석초등학교를 찾아가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그와의 사랑이야기를 펴냈던 어떤 할머니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사랑 덕분에 묻힌 백석의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잠자리 조을든 무너진 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 같다.

시인은 좋은 시를 쓰면 그만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은 훌륭한 법안을 만들고 그 법안이 잘 실행되는지 감시하고 혹 문제가 있으면 적절한 조치를 국민을 대신해서 취하고...

우리들중 몇사람이 그런 것을 점검하고 감시하고 있을까.

합동연설회라는 것이, 어쩌면 사랑이야기로 좋은 시를 가리는 경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백석초등학교 안에는 나처럼 복잡하게, 시시껄렁한 걱정에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후보들이 차례로 연단에 오를 때마다 피켓을 높이 쳐들면서 후보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청중들.

모든 것은 대단히 단순하고 명쾌해 보였다.

두어 마디가 끝나면, 후보자가 한 옥타브 올리면 환호하고 주먹을 쳐들면서 박수를 친다.

마치 공식이 있는 것 같았다.

첫번째 후보자는 가족주의자였다.

가화만사성, 가정이 깨지면 이 나라가 깨진다고 강조하고는 자신은 정말 훌륭한 가장이니 밀어달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슷비슷한 모자를 쓴 아줌마들 가운데서 정확히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여자들이 후보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 후에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야당후보로서 받은 핍박,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기여한 공로, 오로지 한결같은 지역구민과 나라를 위한 충성심.

장소와 이름과 등장인물이 바뀐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거듭 박수가 터지고 그때마다 뽀얀 먼지가 날아올랐다.

청년진보당의 젊은 여성 후보가 연단에 올랐을 때 분위기는 잠깐 "엇, 이건 좀 다른데" 싶어졌지만, 그 여성 후보가 쇠된 목소리로 조목조목 과거와 현재의 불합리한 면들을 짚어 나갈 때 사람들의 반응은 조그만 여자가 말은 잘하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합동유세장.

난생 처음 그런 장소에 갔으니 낯설 법도 했지만 그곳은 너무도 내 눈에 귀에 익숙한 곳이었다.

늙수그레한 아저씨, 아줌마.

똑같은 모양의 피켓.

왜 그들은 그 피켓을 꼭 두번씩 올렸다 내리는 것일까.

유세장을 나오면서 나는 애초의 내 걱정과는 전혀 다른, 정 반대의 바람을 품고 있었다.

차라리 시를 가리는 사랑이야기가 낫지 않는가.

어차피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을 바에야 환상과 꿈이라도 심어줄 수 있지 않은가.

어쩌면 한바탕 축제라도 벌일 수는 없는가.

너무 심심하고 너무 따분한 곳.

젊은이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

먼지 날리는 운동장 저편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는 목련 두그루 본 것을 위안 삼으며 나는 천천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어쩌면 초보관람자인 내가 못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 서울 강서을 합동연설회 참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