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때 아닌 노자열풍이 불었다.

한쪽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또 "노자와 21세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불티나게 팔려나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노자는 공자와 함께 2천5백년전 춘추시대 사람인데 공자가 인과 사회정의를 주장한 현실주의자였던 반면 노자는 기계화와 공업화를 반대하고 인간이 무위자연으로 돌아가 살기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노자가 오늘날 기계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첨단 과학의 시대에 특별히 조명을 받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게 끌어가는 김용옥 교수의 노자 강의가 동기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첫째,노자는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회귀를 주장했다.

과학기술의 편중발달로 신경증에 걸려 신음하는 현대인에게 노자의 자연무위사상은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이다.

둘째,노자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논리가 아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논리를 주장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강자는 언제나 소수이고 약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노자가 주장하는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논리가 자본주의 사회 다수의 약자들에게 큰 위안과 공감을 준 것이다.

셋째,노자는 인생과 사회의 겉으로 보이는 정면과 표면보다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반면과 이면을 보라고 주장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고 겉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자가 주장하는 반면과 이면의 논리는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한국의 노자열풍은 결국 이런 몇 가지 요소들이 결합돼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인간화가 아닌 인간의 자연화,약육강식이 아닌 유약승강강을 내세우고 정면보다는 반면을 강조하는 노자사상이 인간소외 빈부격차 도덕타락 환경파괴가 극에 달한 오늘의 우리 시대에 정면으로 부합된 것이다.

노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도덕경은 5천자에 불과하다.

아마 동양의 고전 중에서 가장 분량이 적은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독특한 사상체계,즉 순과 정이 아닌 역과 반의 방향을 통해서 문제를 보는 시각은 동양의 철학 정치 군사 등 각 방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선진시대의 한비자는 법가에 속하는데 그는 해로와 유로라는 노자 주석서를 저술했다.

이것은 노자사상이 동양사상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 가운데 노자사상을 통치술로 활용한 경우도 많다.

노자사상은 서구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독일의 헤겔,영국의 루소,러시아의 톨스토이,프랑스의 니체 등이 모두 노자사상을 연구했다.

톨스토이는 "노자사상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고 니체는 "노자는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에 보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과 같아서 두레박을 내리면 언제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공자의 논어가 치세를 위한 고전이라면 노자의 도덕경은 난세를 위한 고전이다.

인생과 사회가 곤경을 돌파하고 난세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일러주는 책으로는 동서고금을 통해 도덕경 만한 고전이 달리 없을 것이다.

돈과 힘의 논리에 철저히 의존하고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는 오늘의 시장경제 자유경쟁 사회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장차 위축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확장시키고 장차 약화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강화시켜야 한다. 장차 폐기하려면 반드시 먼저 들어 쓰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보기에 은밀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 이것이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도리이다"

노자 도덕경 36장에 나오는 말이다.

노자는 경제학자이기는 하지만 경영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속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고 지면서도 이기는 현대사회의 경영이론을 능가하는 고차원의 경영원리가 숨어 있다.

근시안적인 얄팍한 경영자는 많아도 철학을 지닌 경영자가 없는 오늘 우리 사회가 21세기와 노자를 구체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길은 바로 노자에게서 경영의 지혜와 철학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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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중국 옌볜대 역사학 박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연구직 전문위원
<>저서:이율곡과 왕안석에게서 배우는 경제개혁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