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탈출,벤처로의 대이동"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뉴스 개발에 여념이 없는 언론이 "대기업으로의 회귀"라는 제목을 단 기사도 내보내고 있을 지경이다.

그래서 벤처로 이동한다는 소식은 철지난 이야기가 돼버렸다.

언론이 워낙 앞서가는 탓인지 신문에서 읽히는 것과는 달리 벤처로 옮길까 망설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개도 고용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인터넷과 하이테크 업계가 인력난에 쩔쩔매고 있는 만큼 창업기업을 이끌고 있는 필자도 인력 스카우트에 소매를 걷고 나서기 일쑤다.

벤처로의 전직을 여전히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비교적 젊은 인력들을 만나지만 막 대학원을 졸업한 한 젊은이는 "장가가야 한다"며 대기업을 택하거나 "부인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실리콘 밸리는 직원들의 전직이 심하다.

실무선상의 엔지니어가 한 직장에 3년이상 있으면 오히려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 받기 십상일 정도로 이직이 잦다.

"옮겨 다녀야 봉급이 오른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불문율이다.

지난 98년말쯤인가.

구조조정이 마침내 한국 공무원에게까지 번졌다.

한 정부 산하 연구소가 외국의 유수 컨설팅 회사를 통해 경영 자문을 받은 결과,연구소 인력의 이직률(3%미만)이 너무 낮았다는 한국 언론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이유인 즉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연구소가 외부로부터 새로운 피를 정기적으로 수혈 받는 것이 연구소 운영에 바람직하다며 아예 9~10%의 이상적인 이직률까지 제시했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졸업후 대기업에 들어가 대리 차장 과장 부장 이사,그리고 특출 나면 고용 사장이 가장 부러운 출세였던 한국의 커리어 풍토에서 역동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먼저 입사한 상관의 뒤를 좇아 한 계단씩 올라가는 승진 체계.따지고 보면 참으로 비합리적인 체제이다.

직장인은 상사에게서 일을 배운다.

일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아 사람도 다이내믹해진다.

따지고 보면 대기업도 새 인력을 통해 외부로부터 새로운 피를 수혈 받을 수 있어 윈윈이다.

연공서열 구조에서는 눈치 빨리 줄 잘서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냉소적인 이야기가 나오던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대기업 구조하에서는 개인의 발전이 쉽지 않다.

이같은 평생 직장 개념은 반대로 기업측에도 손해가 크다.

"사람도 만들어 쓸 수 있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속도가 생명인 하이테크 시대에 언제 사람을 만들어 쓰는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이별인 것이 실리콘 밸리의 생리다.

벤처기업으로의 엑소더스 현상은 놀라울 것이 없다.

한 직장만 어떻게 30년을 다니는가,끔찍하다.

IMF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에서도 평생직장의 개념은 마땅히 설 자리를 잃었고 어차피 "안정된 직장"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근로자들이 깨달았다.

직장은 "옮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왔다.

미국인들에게도 애사심이란 게 존재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셰브론 GM 포드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최고의 직장으로 여겼었다.

20~30년 근속후 퇴직금을 받아 정년 퇴직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 쇼크를 필두로 대량 휴직 사태가 줄을 이었다.

적자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손댈 수 있는 곳은 인건비다.

면직이 줄을 이었고 평생직장을 떠나 취업전선에 나서야 했던 근로자들은 실의에 빠졌었다.

그러나 미국은 변해버린 세계 경제 판도에 이내 적응하고 저임금을 앞세운 동남아에 생산 공장을 넘겨주고 부가가치 높은 하이테크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시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변화 과정에서 미국의 근로자들이 "돌아다녀보니 더 좋더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어느 한국의 창업 기업 경영인과 자문차 만났다.

지극히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국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게 될 경우에는 핵심 엔지니어 몇명은 따라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아주 똑똑한 젊은이들이어서 기술자는 절대 내줄 수 없다.

끝까지 같이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현지로 데려온 엔지니어들이 다른 맘 먹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원칙론이지만 필자의 생각을 이렇게 전달해 주었다.

붙든다고 붙들리는 것도 아니다,직원은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 실리콘 밸리의 생리이고 경영진의 가장 큰 수완 중의 하나가 떠난 사람 빈자리 메우는 것이라고..근로자,특히 하이테크 전문인들의 프리 에이전트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이는 뒤바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mkim@ estop.co.kr (주) eSt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