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기섭 < 롯데 홍보실 사원 > ]

3년전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난국을 헤쳐갈 인물을 선택했던 경험이 마지막 정치참여였다.

그날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접하는 생생한 정치현장에 대한 기대는 20여년 전 봄소풍을 기다리는 동심의 모습으로 나를 이끌었다.

"역시 정치는 비생산적"이라는 세간의 불문율(?)을 재차 확인하며 들어선 교정에서 대한민국 정치1번지라는 포장된 이미지보다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9명이라는 출마자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 백화점 도우미를 연상시키는 운동원들의 90도 인사, 왠지 "낮의 세계"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깨들", 민생의 현장에선 보기 힘든 많은 수의 경찰 등등.

첫번째 후보는 애써 자신과 종로의 관계를 엮으려 했고, 남들도 다하는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빈민운동가 출신의 두번째 후보는 기성후보에 비해 인간적인 면에서는 매력적이었으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잘 하겠다는 주장보다는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연설을 계속했다.

시민단체의 "집중 낙선 대상"이 된 여당 후보는 카메라가 무서웠는지 유세 시작 한시간 반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언론에서 보여지는 부정적인 모습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물론 동원된 청중, 비난, 야유, 상호욕설 등 선거유세의 "전통"(?)들은 여전히 보였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없었다.

병아리들의 봄볕쬐기 장소같은 노인들만이 차지한 스탠드, 앵무새의 지저귐 같은 화석화된 구호들.

젊음이 차지하고 들어설 여지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싱싱한 이 몸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은 동원된 운동원들에 대한 연민 뿐이었다.

따갑기까지 한 봄볕과 상쾌하지만은 않은 봄바람이 일으킨 흙먼지에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차례를 기다리는 운동원의 모습에선 열정보다는 처량함이 느껴졌다.

"그들도 곧 폐기처분될 건데" 하는 이 사회에 가르쳐준 어쩔 수 없는 비관말이다.

하지만 연설을 수화로 통역하는 모습, 시키지도 않았지만 담배꽁초를 줍는 운동원의 모습 하나하나는 희망의 씨앗이었다.

흙바람을 뒤로 하고 교문을 나섰다.

허전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갈증해소를 기대하고 마셨으나 실제로는 김이 빠져서 텁텁한 맥주를 한잔 한 느낌이다.

서울 종로선거구 합동유세장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