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빛을 꺼 주시오.당신을 볼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시오.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발없이도 갈수 있고 입 없이도 약속할수 있습니다/내 심장을 막아주십시오.뇌가 고동칠 것입니다/뇌속에 불을 던지신다면 내 피속에 당신을 실어나를 것입니다".

독일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유명한 "내 눈빛을 꺼주시오"이다.

이 작품은 루 살로메에게 헌정된 "기도시집"에 수록됐다.

릴케는 문학의 종교적 속성에 주목,시를 기도에 비유했다.

모든 시집은 내용 여하를 떠나 하나의 기도서인 셈이다.

독일 현대시의 출발점이자 실존주의의 선구인 릴케의 전작품이 번역된다.

책세상출판사는 처녀시집부터 미번역 예술론까지 릴케전집 13권을 출간키로 하고 1차분 4권을 먼저 펴냈다.

"기도시집(1)""말테의 수기"(9)"로댕론"(10)"단편소설집"(7)이 그것.

유명한 "두이노의 비가"(2)프랑스어시(3)시작노트(4)희곡(5.9)유고 모음(6)초기 산문(8)예술론(11.13)도 잇따라 발간된다.

릴케는 김춘수에서 이성복까지 한국시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이미 카프카 카뮈 괴테 보들레르 보르헤스 전집이 출간됐음을 볼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전집은 국내 초역 작품은 물론 독일에서도 비평 초기단계에 있는 희곡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릴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릴케의 시는 언뜻 이해하기 쉬워 보인다.

그러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드물다.

로베르트 무질 등 당대 일급 문사의 평을 봐도 마찬가지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릴케의 신은 곧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는 욕망"라며 "신은 중심속의 중심,장미 꽃잎속의 꽃과 동의어"라고 부연했다.

릴케가 "주여,여름은 위대했다"라고 외칠때 "주"는 기독교의 신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실존이었던 셈.

"내 거기서 태어난 어둠이여,내 불꽃보다 그대를 사랑하네"는 절창이 그 심연에서 나왔다.

일찌기 독일의 전기작가 볼프강 레프만은 "릴케처럼 하찮은 데서 출발,숭고한 지위까지 오른 시인은 없었다"며"후기 작품은 독일문학의 정점을 이룬다"고 말했다.

릴케는 생전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대척점에 위치했다.

1926년 51세의 릴케가 백혈병으로 운명하자 브레히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릴케의 친구였던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오,릴케.나는 그의 마음속에 깃든 이 세상 가장 섬세한 인간을 보았고 또 사랑했다. 그는 온갖 정신적 불안과 비밀로 고민했던 몇 안되는 인간이었다"고 안타까와했다.

"오라 그대,내가 인정하는 마지막 존재여/육체의 조직속에 깃든 고칠수 없는 고통아/생명은 저 바깥에 있고/나는 불타니,나를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릴케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에는 "장미여,순수한 모순이여.수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이라고 새겨져 있다.

윤승아 기자 a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