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교수님은 뛰어난 베스트 드레서일 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하신데요,자신의 어느 부분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십니까?"

토크쇼 사회자가 이정숙에게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예요"

이정숙이 자신의 머리 옆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미소 속에 말했다.

미친년! 지까짓 게 알면 얼마나 안다고...

황무석이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매력이 머릿속에 있는 여성은 몸의 어느 한 부분 매력 아닌 부분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어쭈 이제는 막가는 처지구나,라고 중얼거리며 황무석은 이정숙이 이 토크쇼의 사회자와 심상치 않은 관계라는 소문을 들었다는 운전기사의 말을 상기했다.

황무석은 리모컨을 잡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래도 텔레비전이 꺼지지 않자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황무석은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방금 전 화면에 비친 이정숙의 모습이 눈앞 에 어른거려 가슴이 답답해왔다.

자신도 사람을 볼 줄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정숙이 주가조작이라는 진성호의 큰 약점을 잡고 있는 이상 그대로 호락호락 넘어갈 여자는 아니고 진성호도 헤어지는 아내와 적당히 위자료 타협을 끌어낼 위인이 아니었다.

이정숙측에서 위자료 조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가조작으로 공갈을 치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것을 요구함에 틀림없었다.

황무석은 버릇없이 멋대로 놀아나는 젊은 부부의 이혼문제가 자신의 파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어왔다.

그는 자신의 파멸이 가족에게 가져올 엄청난 상처를 생각해보았다.

아들 정태는 최첨단 컴퓨터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로 2,3년 후면 따논 당상인 조교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자리마저도 잃게 될 것이며,좋은 집안에 시집가 잘살고 있는 큰딸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날 것이고,두 달 있으면 양가집 며느리가 될 작은 딸의 혼사는 깽판이 날 것이며,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는 마음의 상처를 견뎌내기 힘들 것이었다.

황무석이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기꺼이 겪고 온갖 수모를 감내하면서 현재의 사회적 지위에 도달한 것은 순전히 가족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낮 동안 사환 노릇을 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녔던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시절이 그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펼쳐졌고,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가 작은 집안의 자식이라고 아들이 학교에서 강제급식을 받았던 때 그가 느낀 분노가 그의 가슴을 짓눌러왔다.

이제 머지않아 그렇게 어렵다는 일류대학의 조교수 자리를 차지할 정태를 그리며,이제는 교수 아버지로서 고매한 인격을 보이려고 작정한 지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황무석은 숨이 막힐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