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데는 이 길만이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판단을 내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북한 내부를 붕괴시켜 흡수통일하려는 "화평연변(서방의 대사회주의 와해공작)정책"이라며 반대해 왔다.

그러나 남한측이 국가간 통일보다는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통해 남북교류가 이뤄지는 "사실상 통일(defacto unification)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북한도 남한의 제의가 체제유지에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북측의 변화는 지난해말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당국자들의 비공식 발언이 나오고, 매년 발표하는 신년공동사설에서도 올해는 남한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안했다.

개방과 경제발전이라는 실리적 이유도 북한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끈 "당근"으로 작용했다.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등 서구와 관계개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가 필수적이었다.

북한이 이탈리아와 수교하고 서방 여러나라들과 수교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지난달 20일 북한 백남순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주룽지 총리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 북한 내부에서도 개방파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북한에 경제적 지원과 혜택을 줄 의지와 재원을 갖고 있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다는 사실도 개방파들한테는 큰 힘이 됐다.

북한경수로사업(KEDO)과 대북비료지원,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사업들이 활성화되면서 북한의 경제발전에서 남한의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이는 지난 3월 남북 당국간 협력을 천명한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나온 직후부터 북한이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북측이 태도를 돌변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아.태재단 김근식 연구위원은 "북한에서도 냉전구조의 온존을 바라는 일부 강경파가 있으므로 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남한측의 더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