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며 몇차례 "(세금포탈자는) 사직당국에 고발하고"라는 표현을 썼다.

"사직"이란 말에는 봉건왕조시대 국가와 조정의 의미가 들어있다.

사직당국이라면 절대군주 체제를 유지하는 기관을 뜻한다.

다른 의미로 사직은 재판관, 법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정부기관이 인터넷에도 올리는 공식적인 대외문건에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에 맞추면 사직당국보다는 사법당국이라든지 경찰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섰다지만 행정 용어는 아직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3급 고위공무원중에 많은 "심의관"도 그런 용어다.

일본풍이 듬뿍 들어있는 이 말은 국장이나 부국장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기획예산처의 예산총괄심의관이나 경제예산심의관은 각각 예산총괄국장,경제예산국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실장 밑에 국장을 두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심의관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지만 이들이 하는 업무는 일반 국장과 다를 게 없다.

대신 재경부의 경제정책심의관처럼 국장이 별도로 있는 보직은 경제정책부국장으로 바꾸면 일반 국민도 이름만 보고 지위를 바로 알 수 있다.

담당관이란 보직도 마찬가지.

거의 전 중앙기관에 각종 담당관이 있다.

행인들을 붙잡고 물어보자.

담당관이 어떤 공무원인지 아느냐고.

십중팔구 모를 것이다.

이 경우도 기획예산담당관,행정관리담당관 대신 기획예산과장,행정관리과장이라면 명료해진다.

외청의 "차장" 자리도 그렇다.

기자가 만나본 일부 차장들은 본인부터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더구나 n세대는 "과장과 부장 사이의 차장 말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행정체계와 정부조직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국세청차장,관세청차장 이라기보다 국세청부청장,관세청부청장이 훨씬 명확하게 들릴 것이다.

철학자들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개념)의 중요성과 정확한 말을 쓰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디지털 시대에는 이 시대에 걸맞은 말을 찾아가고 다듬어 갈 필요가 있다.

한자 교육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이 한자와는 거리가 먼 신세대 "네티즌"이나 그런 부류의 벤처기업인에게 "<><>담당관을 만난뒤 <><>심의관과 협의하라"면 이 행정은 서비스인가,군림인가.

허원순 경제부 기자 huhws@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