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정숙도 아들과 같이 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황무석의 머리에 떠올랐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토크쇼에 나와 화냥년처럼 멋대로 행동하고 거기다가 토크쇼 사회자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정숙과 같은 교수가 있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모독이고 모든 학자에 대한 모독이며,아들에 대한 모독이고 교수를 아들로 둔 자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냥 이대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더 기막힌 일이 있다.

이정숙의 아버지도 알아주는 법학과 교수가 아닌가.

황무석은 누워 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똑같은 교수의 아버지로서 이정숙 아버지인 이인환 교수에게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번호부를 들고 이인환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여섯 개가 나왔다.

네 번째 전화번호를 눌렀을 때야 비로소 이인환 교수댁이라고 전화를 받는 여자가 답해주었다.

"이인환 교수님 지금 계십니까?"

황무석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잠깐만 계세요"

곧 여보세요,하는 저음이 들렸다.

황무석이 얼른 손수건을 수화기에 대었다.

이인환 교수가 과거에 잠시 대해실업의 법률고문을 맡기는 했으나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이름만 올려놓았기 때문에 서로 직접 만나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전화로 실례합니다.

저도 이 교수님처럼 교수를 자식으로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교수님 따님이 이정숙 교수지요?"

"그렇습니다만은..."

"이정숙 교수에 대하여 잠깐 말씀 나누려고 합니다"

"잠깐 기다리시지요"

그러더니 이인환 교수가 정숙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교수님,이 교수님..."

황무석이 수화기에다 대고 불렀으나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이인환 교수와 통화하여 이 교수 딸의 처신에 대해 아버지에게 충고하려던 계획이 빗나가버렸다.

"이정숙입니다"

이정숙의 콧대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교수를 아들로 가진 사람입니다.

이 교수에게 그런 사람으로서 몇 마디 드리려고 합니다"

황무석은 손수건을 수화기에 더 바싹 대며 말했다.

"누구세요?"

"누군지는 상관없고 이 교수에게 도움이 될 말입니다"

"무슨 얘긴지 해보세요"

"오늘 저녁 이 교수가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교수는 처신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이정숙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