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미래학자>

미국의 한 저명한 기술자가 우편물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서 충격을 주고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빌 조이는 "와이어드 매거진" 4월호에 기고한 "왜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가"라는 글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 스스로 연구자료를 없애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공학과 나노기술(원자단위까지 쪼갤 수 있는 과학기술) 로봇제작이 기계의 파괴적인 자기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기술이 인류를 노예로 만들고 있다며 과학자들을 위협했던 유나바머,시오도어 카진스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빌 조이는 발달된 분자 전기공학 덕분에 2003년이 되면 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이 인간의 뇌를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로봇이 인간보다 더 똑똑해져 자기복제가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5년간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를 연구한 전문가로 기술발달을 선도했다.

그러나 그는 유나바머의 극단적인 주장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질렀다.

즉,인류가 기계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기계의 결정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또한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동물처럼 사육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도 잘못됐다.

이 두가지 견해는 기계적이고 단순한 추리에 따른 결과로 복잡한 물리적 사회적 작용을 간과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탈행위는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사회의 무수한 자동제어기능에 부딪혀 소멸된다.

조이와 카진스키는 둘다 컴퓨터의 용량이 커질 때 인간의 뇌는 정체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하다고 주장한 로봇제작 유전학 나노기술은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발달시키거나,또는 완전히 새로운 용도로 응용될 수 있다.

카진스키처럼 조이 역시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반란을 초래하는 기술을 만들었지만,재앙의 순간에 뒤로 한발짝 물러설 줄 아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20세기 가장 큰 발견은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인간이 한번 원자폭탄을 사용한 후 반세기동안 다시는 그것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일탈행위의 고리를 끊기위해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의 반작용을 걱정해 왔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이의 처방은 기술의 오용 자체보다 더 끔찍하다.

그는 기술을 폐기하고 지식에 대한 탐구를 제한할 것을 주장하지만 이는 막힘없는 호기심과 자유로운 연구라는 과학의 근본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과학은 원자폭탄과 환경오염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고통과 굶주림을 줄이고,민주주의의 제한된 혜택을 누릴수 있도록 해주었다.

만약 우리가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을 제한해야 한다면,과연 누가 그 결정자가 될 것인가라는 중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권력자가 그 결정을 맡는다면 조이가 우려하는 바로 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의 "파괴적인 자기복제"를 막는 것이 지식의 발전적인 "복제"마저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60억 인구의 머리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의 무절제한 개발과 오용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해답이 기술의 통제가 아니라 개발에 있다는 점이다.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통제하기 위한 발달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본사독점전재 >

정리=정지영 기자 cool@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