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황무석은 아파트 문 쪽에서 나는 소리에 고통스러운 사념에서 빠져나왔다.

누군가 아파트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머리가 쭈뼛 섰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아내와 아들과 작은딸이었다.

황무석은 얼른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보, 일찍 오셨네요? 그런데 당신 안색이 왜 그래요?"

아내가 현관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아니야.조금 피곤해서 그래.뮤지컬은 재미있었어?"

"좋았어요. 아빠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딸이 말했다.

황무석은 서재로 갔다.

오늘 저녁은 가족을 대하기가 두려웠다.

신문을 들었으나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방금 전 이정숙이 한 말만 되풀이해 들려왔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아들 정태가 들어왔다.

"아버지,피곤하시지 않으면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

"앉아.괜찮아"

신문을 놓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버지,저 폴란드에 가기로 했어요"

"여행하러? 방학을 이용해 가겠다는 거지?"

"아니에요. 대우 현지 법인의 직원으로 가기로 했어요"

황무석은 아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 연락 받았어요. 그쪽 컴퓨터 분야에서 일하게 될 거예요"

"얼마 동안이나?"

"2년 동안이에요"

"학교는 어떡하고?"

"일단 휴직원을 냈어요"

"무슨 이유 때문이야?"

황무석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냥..조금 젊을 때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왜 하필 폴란드에 가겠다는 거야?"

"세계 경영에 앞장서고 있는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싶어서요"

"그런 험악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려고 해?"

황무석이 상을 찡그렸다.

"저는 아버지가 너무 잘 보살펴주신 덕에 고생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제 저도 다른 젊은이들처럼 고생해볼 때가 됐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런 일은 쉽게 정는 게 아니야.요즘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 2년이란 너무 긴 시간이야"

"벌써 결정했어요.

한 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떠나기로 되어 있어요"

"어떻게 니 마음대로 결정해?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황무석이 소리를 꽥 질렀다.

"너무 잘해주시기 때문에 저도 고생을 경험할 때가 되었어요"

"그건 또 무슨 괴변이야? 네가 폴란드에 가야만 고생을 할 수 있다는 거야?"

"그곳 작업환경이 아주 어렵다고 친구들한테 들었어요.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내일 다시 얘기하자"

황무석은 신문을 들었다.

아들이 서재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