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뭔가 일을 해낼 인물임에 틀림없다.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 등은 그의 재능과 감독으로서의 "끼"를 드러낸 작품들이다.

"그의 영화는 너무 엽기적인 장면들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실험정신"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김 감독은 소재를 선택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다른 감독에게서 볼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을 느끼게 해준다.

밑바닥 인생들을 그리면서 인간에 대한 애착을 일관되게 추구한다.

김 감독의 네번째 작품인 "섬"은 전작들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영화다.

육지속의 외딴 섬인 저수지 낚시터를 배경으로 기존 작품에서 보여줬던 인간들의 폭력성과 강한 생명력을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했다.

희진(서정)은 저수지 낚시터의 여주인이다.

낮에는 낚시꾼들에게 식.음료를, 밤에는 몸을 팔면서 살아간다.

어느날 현식(김유석)이란 젊은 남자가 낚시터로 찾아든다.

그는 좌대(낚시꾼들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저수지 위에 띄운 조그만 집)에서 철사로 공예를 만들줄 아는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다.

죽기 위해 이 곳에 온 현식은 고뇌 끝에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희진이 좌대밑으로 잠수, 현식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 자살을 막는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 사이엔 묘한 감정이 생긴다.

낚시터에 검문을 온 경찰들이 들이 닥치자 현식은 낚시바늘을 입에 넣고 자해를 시도하나 희진의 도움으로 또다시 살아난다.

경찰을 따돌린 둘은 좌대에서 정사를 나눈 후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희진의 실수로 다방여종업원이 저수지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현식이 낚시터의 고립감을 견디지 못해 떠날 결심을 하자 이번에는 희진이 자궁에 낚시바늘을 집어넣는 자해를 시도한다.

현식은 희진을 구해주면서 자신이 그의 곁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영화는 새벽에 물안개가 깔리는 자연속에서 희진과 현식이라는 두 주인공과 낚시꾼들의 원초적인 단면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외딴 곳인 낚시터 저수지는 희진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분출하고 삶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강한 애착이 담겨 있는 세계다.

그런 점에서 이 곳을 찾는 현식과 낚시꾼들은 희진의 미끼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섹스에 대한 욕망, 보기만해도 섬뜩한 낚시바늘로 자해하는 장면, 일부 부위를 회치고 물고기를 다시 방생시키는 장면 등은 너무 자극적이면서 원초적인 단면들이지만 솔직한 "세상 들여다 보기"이기도 하다.

"섬"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배경으로 좌대에서 낚시꾼들의 배뇨장면이나 좌대에 모터를 붙여 이동시키는 장면은 김 감독의 독창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희진역의 서정은 "박하사탕"에서 가구점사장 김영호의 정부인 "미스 리"로 등장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말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몸과 표정으로만 연기해야 하는 역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매서운 눈매에 이미지가 강해 주목받을 여배우다.

현식역의 김유석은 러시아 쉐프킨 국립대에서 체계적으로 연기 교육을 받은 연기자다.

22일 개봉.

이성구 기자 sklee@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