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사상최악의 오보사태가 터졌다.

15대 총선 때도 유사한 일이 빚어졌었지만 이번처럼 심하지는 않았었다.

제1당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정당별 의석수는 20석까지 틀렸다.

탈락자가 "당선 확실"로 발표됐는가 하면 같은 지역구를 놓고 각 방송이 서로 다른 당선예상자를 발표해 혼선을 일으키기도 했다.

TV방송 3사가 한결같았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신문들은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이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초판 신문을 발행,결과적으로 전체 언론사로 오보가 확대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듯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방송사들이 저마다 자랑스레 홍보한 출구조사가 실제 개표상황과는 반대로 나타나자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라고 보도한 내용들이 다 이런 것 아니었느냐"며 "한마디로 ''국민기만''"이라고 흥분했다.

출구조사와 개표방송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이 또다시 이번 같은 혼란스런 상황을 겪지 않도록 방송사들에 대해 별도의 개표방송 준칙을 마련해야 하며 여론조사기관에 대해서도 출구조사와 관련된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방송사 및 여론조사기관의 해명=한 방송사 관계자는 "유권자 가운데 무응답층이 워낙 많은 데다 무응답층에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강한 중.장년층이 집중 분포돼 오차가 많이 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출구조사나 선거여론조사 역사가 일천해 아직도 실제 투표행위와 다르게 응답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출구조사가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사를 맡았던 한국갤럽의 박무익 소장은 "대통령 선거에 비해 총선은 워낙 지역구가 많은 데다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해 예측 자체가 어렵다"면서 "응답자들이 실제로 투표한 것과는 달리 여당 편향으로 응답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다른 조사기관의 관계자는 "전화 통화내역이 도청당한다거나 자신의 발언이 다른 의도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며 "의견이나 발표에 대한 피해의식이 누적돼 겉으로는 "여당지지"를 표방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 들은 유권자의 잠재성향을 문제삼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미 15대 총선에서도 같은 경향이 확인된 만큼 실제행위와 발표간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반영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정서가 강하고 연령층별로 정치적 성향이 크게 엇갈려 지역별 연령별 계층별로 행동양태와 관련된 별도의 분석모델이 적용됐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또 이번 오보사태는 여론조사기관의 준비부족과 조사요원들에 대한 교육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가 봇물을 이루면서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않은 요원들을 마구잡이로 투입,"진실한 답변"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질문의 순서와 태도,분위기 등에 따라 답변의 진실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설문조사의 기본인데도 무작정 질문을 쏟아부어 "엉터리 답변"만 들었다는 것이다.

서강대 사회학과의 박상태 교수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지나치게 상업화돼 결과를 내놓는 데만 관심을 기울일 뿐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며 "샘플 사이즈의 설정에서부터 응답자의 행동양상에 대한 분석,조사요원 훈련,조사 방식 등 정치조사에 대한 전반적인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민사회에서는 여론의 향배가 정치적 의사결정을 이끌어 낸다"며 "잘못된 여론조사는 왜곡된 정치적 결정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부실한 조사가 남발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유택 기자 changyt@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