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펫(Warren Buffett)은 현 시대가 낳은 전설적 투자가중 한 사람이다.

버펫이 샀다는 말만 듣고도 마음 푹 놓고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난달 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Birkshire Hathaway)의 주가는 2년 전의 최고가 대비 절반 이상 하락했다.

20년 이상 지속되던 그의 "가치투자(Value Investing)"에 비상이 걸렸음을 뜻한다.

이는 또한 때마침 불거진 타이거 펀드의 해체와 더불어 "저평가 기업에의 장기투자"라는 고전적 관념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심지어 지난날 버펫의 성공이 과연 실력이었을까 아니면 연속된 행운이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생겼다.

명성을 쌓기는 어려워도 잃는 건 한 순간일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어쨌든 소위 가치 투자자들에게 버펫은 우상과 같은 존재다.

"저평가된 보물"을 찾아 아무리 쫓아다녀도 지치지 않는 건 그 대가의 성공이 등불이 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장이 고꾸라져 코피가 나도 두렵지 않은 건 그도 같은 고통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내가 그리는 대가의 모습은 좀 다르다.

나에게 있어 대가는 1,2등을 다투는 최고가 아니다.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스타들이 아니다.

늘 10등 근처에서 얼렁거리는 이름 없는 학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과목이 일정하고 나올 문제가 다소 뻔한 학교 공부는 재주만 있으면 3년 내내 전교 1등이 가능하다.

운이 좋아 1등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반면 상상치 못한 온갖 충격이 사방에서 강타하는 시장에서의 1등은 우연으로만 가능하다.

내 시나리오 대로 시장이 잠시 놀아 주었다는 것 이상 그 1등은 달리 의미하는 바가 없다.

그 "잠시"가 꽤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밀월이 끝나고 시장이 등을 돌리는 순간 그 추락은 남보다 더하다.

이미 이름은 나 있고, 돈은 커져 있고,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린다.

경부고속도로를 3시간에 주파해 왔으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1등은 우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다.

최악의 타이밍에 그를 만난다면 하나뿐인 내 생명이 그의 추락과 함께 묻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의 진정한 대가는 결코 1등을 하는 법이 없다.

까무러칠 정도로 벌어서 기자들이 들이닥치거나 TV 광고에 출연하는 일도 없다.

그저 장이 좋을 때는 예외없이 10등 근처 어딘가에 조용히 이름 석자가 올라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장이 험악할 때도 돈을 벌어주는 무슨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땐 남들처럼 잃고 앉아 있다.

그렇지만 적당히 내 줄 만큼만 내준다.

그래서 따가운 눈총을 받을 일도 없다.

등수를 보면 여전히 10등이다.

항상 관심밖에 묻혀서 살아 간다.

맑으나 궂으나 나의 대가는 언제나 10등이다.

1등을 못하는 이유는 시장이 무서운 줄을 알고 움츠리기 때문이다.

꼴찌로 처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무지를 벌써부터 깨닫고 늘 겸손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장과 함께 호흡하고,시장이 주는 만큼만 먹고,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깨진다.

이런 사람을 대가라 불러 주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

그게 바로 현명한 투자자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 김지민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 투자클리닉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