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서울대교수 국제지역원장>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조건을 조사한 결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가장 선호됐다고 한다.

그러면 전문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매킨지 컨설팅 회사에서는 직장에서 전문가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두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자기가 맡은 업무를 반드시 이뤄내는 사람,둘째는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두가지 중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포함시켜 전문성을 규정하고 싶다.

첫째,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하는 기본조건은 컴퓨터로 집약되는 듯 하다.

필자가 지난 1월6일자 다산칼럼에서 "21세기 경영화두는 3D"라는 글을 쓴후 3D,즉 Digital DNA Design 은 어느덧 세상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하는 표현이 됐다.

그러나 이 세가지 D를 연결하는 중심점에 존재하는 것은 역시 컴퓨터이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돼 인간의 DNA를 해독해냈다고 하지만 컴퓨터가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신의 영역,즉 초과학의 세계라고 치부했던 창조행위에 대해서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컴퓨터를 통해서 이제는 디자인이란 학문으로 조직적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는 디자인이란 분야에 창조라는 행위를 과학적으로 접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주었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디자인은 21세기의 총아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컴퓨터는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컴퓨터를 모르는 하급 노동자가 될 것인가,아니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급 두뇌가 될 것인가.

큰 사무실에서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해도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경영자는 비숙련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

이제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 하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컴퓨터를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전문가라면 자신이 선택한 전공영역에서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오늘날 지식과 학문의 발전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전자공학에서는 학문의 반감기 (half life) ,즉 기존에 축적돼 있는 양만큼 새로운 학문이 새로 개발되는 데 드는 기간이 3년이고 경영학에서는 5년이라고 한다.

이렇듯 기존의 학문은 사정없이 도태되는 동시에 새로운 이론이 탄생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 전공영역에서 전문가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가야 한다.

결국 전문가란 자기가 맡은 역할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즉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셋째,전공영역에서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삶에서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 가족생활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축록자 불견산 확금자 불견인"이라는 회남왕 유안의 글귀에 있듯이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켜쥐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전공영역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보다 풍요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존재가 돼야 한다.

여유 있는 삶은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보통 인간은 자기 능력의 3~10% 정도를 쓰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해서 1백%를 다 쓰겠다고 하는 사람도 비정상적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자기 능력의 75%를 발휘하면서 나머지를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흔히 인간의 일생은 삶을 준비하고 일하고 쉬는데 3분의 1씩 사용된다고 한다.

즉 평균수명을 75세라고 할 때 25세까지는 공부하고 50세까지는 일하며 75세까지는 쉰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약간 바꿔 보면 같은 시간 배분이라도 훨씬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듯 하다.

즉 하루에 8시간은 준비하고 8시간은 일하며 8시간은 쉬는 자세를 갖춘다면 더 균형 잡힌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진국이란 전문성을 가진 국민들로 구성된 나라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는 스스로를 전문가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다 같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룰줄 알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며,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갖자.

dscho@sia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