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전자업체 A사.이 회사의 정보화 추진 담당자인 K이사는 지난해 말 구축한 "인터넷을 통한 주문추적 시스템" 때문에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주문추적(order tracking) 시스템이란 대리점에서 본사에 제품을 주문할 때 영업사원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수많은 영업직원의 일을 덜고 다른 분야를 강화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회사의 기대가 큰 프로젝트였다.

고가 서버 컴퓨터를 설치하고 본사와 전국 1백여개 대리점 사이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데 수십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활용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본사 내부의 재고 내역 정보가 정리돼 있지 않아 기껏 인터넷으로 연결해놓고도 검색할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회사는 결국 실제 대리점에서 주문할 때는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건 뒤에야 처리할 수 있었다.

한국IBM 박정화 실장은 이에 대해 "성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느라 겉옷과 속옷을 제대로 맞춰입지 못한 격"이라면서 "이런 사례는 국내 업체에서 B2B 시스템을 구축할 때 흔히 있다"고 말했다.

e비즈니스 바람에 휩쓸려 성급히 정보화를 추진하면서 외형은 디지털로 바꿨지만 근간을 이루는 부분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유명 의류업체 B사 직원들은 지난해 말 사내 e메일 시스템을 구축한 뒤 오히려 일이 늘었다고 하소연한다.

모든 결제는 인터넷으로 하자는 게 원칙이지만 실제 업무는 전부 이중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임원 결제용으로는 여전히 종이 서류를 만들어야 했고 심지어 e메일을 열어보지 않아 회의에 불참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회의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당당히 화내는 일도 생겼다.

오라클코리아의 e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윤석태 실장은 "1~2년 전 전사적 자원관리(ERP)시스템 구축 붐이 일었을 때 가장 큰 논란을 낳은 대목중 하나가 "비자금 접대비등 과외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ERP 시스템이란 결제 회계등 기업체 주요 업무 전체를 인터넷 기반에서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국제통화기금(IMF) 한파 이후 투명한 업무처리 등 글로벌 스탠더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정보화 측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ERP 도입을 결정해 놓고도 대부분 기업은 이런 기존관행 처리를 고심해야 했다.

e비즈니스를 경쟁력 향상의 도구가 아니라 단순히 기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려 한 데서 나온 문제였다.

표준 제정도 시급하다.

기업간(B2B) 전자상거래를 위해서는 제품에 대한 품질 인증,공급자 인증,표준화된 전자문서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공신력있는 기구에서 통일된 표준을 정하지 못하니까 B2B 구현이 자꾸 멀어진다는 것이다.

LG전자 비즈니스 혁신담당 박홍진 상무는 "e비즈니스를 단순히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기업체의 e컬처 수립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무 관행과 기업문화를 함께 변화시켜야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정보화를 추진할 때 인사 교육팀과 연계하고 있다.

결국 국내 기업 e비즈니스의 성패는 이것을 인터넷 관련 기술로 보느냐,아니면 경영 전략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정애 기자 jcho@ 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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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비즈니스의 정의 ]

e비즈니스(electronic business)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기업체 업무 전반을 인터넷 등 정보기반으로 옮겨 실행하는 것"이다.

즉,구매 제조 영업 인사 회계 등 기업체의 업무 전체를 인터넷 기반에서 해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e비즈니스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EC)는 전체 e비즈니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e비즈니스에 필요한 정보시스템의 주요 구성 요소는 전사적자원관리(ERP) 공급자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지식관리시스템(KMS) 등이다.

이런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야 완벽한 e비즈니스를 기대할 수 있다.

SCM(Supply Chain Management)이란 다양한 부품을 적기에 구매.조달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예를 들어 PC업체에서 적용하면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 핵심 부품이 정확히 어느 날짜에 몇개씩 들어오게 될지 인터넷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

CRM(Customer Relationaship Management)이란 고객에 대한 각종 정보(DB)에 기반해 맞춤 서비스를 가능케하는 시스템.고객의 기존 구입 품목,횟수등에 기반해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가장 적합한 예상 고객에게 제품내용을 소개할 수 있게 도와준다.

KMS(Knowledge Management System)는 기업내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지식과 정보를 종합 관리해 정보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주는 시스템이다.

ERP(Enterprise Resources Program)는 결제 회계 인사등 기업체의 주요 업무를 인터넷 기반에서 실행할 수 있게 해준다.

조정애 기자 jcho@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