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제 기자님. 총선 개표과정을 취재하지 않고 이곳에서 한가하게 바둑만 두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정치부 소속은 아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취재하셔야죠"

"개표상황을 생중계하는 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대국실에) 방금 들어왔습니다. 지금 바둑만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우스로는 바둑을 두지만 귀로는 취재를 하고 있지요. 멀티태스킹(다중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제 컴퓨터에서는 지금 선거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답니다"

지난 14일 새벽 인터넷으로 총선 개표과정을 본후 바둑 대국실에 들어갔다가 "흑곰백곰"이란 이름의 상대에게 일침을 당했다.

다행히 "흑곰백곰"도 인터넷 개표방송을 틀어놓은채 대국중이어서 총선 얘기를 나누며 대국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있는 PC방에는 "개표방송을 들으면서 게임을 즐기는 네티즌이 많다"고 귀띔해 주었다.

대국을 끝낸 뒤 인터넷 방송국에 다시 들어가 보니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의견을 받습니다"라는 시청자 마당에는 이미 1천여건의 글이 올라 있었다.

30초당 1건씩 글이 올라오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조회수가 건당 70회 안팎에 달할 만큼 많았다.

"캐나다에서 고국의 선거방송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합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방송사측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캐나다에 사는 한 교포는 이런 글을 남겼다.

이 교포는 "고국의 정치에는 만족하지 않지만 인터넷 분야에서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 고국이 자랑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인터넷이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는 사실만 재확인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방송은 이날 현행 공중파 TV방송으로는 불가능한 양방향성의 이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네티즌들은 방송국이 제공하는 정보를 보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캐나다 교포가 글을 남긴 인터넷 게시판이 네티즌들의 방송 참여 무대가 됐다.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이 게재됐다.

개표가 시작된 직후인 13일 초저녁에는 시민단체 낙선운동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당선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흥분해서 쓴 글이 많았다.

이튿날 새벽 개표가 끝난 뒤엔 "총선연대" 이름으로 "재생된 쓰레기 명단을 기억하세요"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쓰레기(낙선운동 대상자)가 분리수거되지 않고 재생돼 아쉽다"면서 "앞으로 이들의 국회활동을 면밀히 지켜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사 개표결과 예측이 빗나간 것에 대해 "한심하다"며 따갑게 질타하는 글도 올랐다.

개표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이 발휘한 또 하나의 위력은 문자방송이다.

공중파 TV의 경우 관심 지역구의 개표상황을 확인하려면 한참동안 다른 지역구의 상황을 지켜 봐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관심 지역구를 클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후보자별 득표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표방송을 틀어놓고 인터넷으로 게임이나 바둑을 즐길 수도 있었다.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일부 인터넷방송국의 경우 접속자가 많은 탓인지 속도가 느리고 동영상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게다가 3,4년 뒤에 열리는 선거에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게 분명하다.

이날 한 네티즌은 게시판에 "인터넷세상은 이렇게 변하는데 정치는 도대체 어느 세월에 변할는지..."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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