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잠수통"부터 21세기 해저 가옥까지 인류의 심해 탐사 2천5백년을 정리한 "인류의 해저대모험"(수수꽃다리,1만 5천원,이인철 옮김)이 번역됐다.

저자는 프랑스 해군 출신의 과학자 클로드 리포.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보고서는 붉은 피 낭자한 사고 일지를 겸한다.

잠수함의 전사는 비행기나 우주선의 역사처럼 "죽음 하나 하나를 베이스 캠프"로 한다.

인류가 호흡곤란으로 헉헉 대면서도 바다에 뛰어들지 못해 안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번째 이유는 호기심이다.

고대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당나귀가죽을 씌운 포도주통에 들어가 해저 10여미터로 내려갔다.

물은 나무통속으로 스며들어 대왕의 허리까지 찼다.

압축된 상층부 공기는 몇분간 숨 쉴 여지를 제공했다.

대왕은 나무통의 유리창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물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으나 당시 기술 수준로 미뤄 볼때 불투명한 유리로 상어를 잘못 본 것 아닌가 추정된다.

두번째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다.

해녀의 물질 등의 생계형 잠수도 있으나 난파선 보물 찾기가 훨씬 짜릿하다.

전설적인 인물은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핍스.

그가 스페인 보물선에서 건진 보물은 2만 파운드어치에 달했다.

보물선 인양은 일찌감치 양성화돼 고대 그리스의 경우 해저 30미터에서 건진 보물의 3분의 1,해저 60미터는 2분의 1을 발굴자에게 주었다.

1782년 승객 1천3백명을 태운 로열 조지호가 침몰하자 일대의 꾼들이 모두 바다로 몰려들었다.

덕분에 잠수복 제조기술이 급격히 발달했다.

군사적 요인은 세번째다.

초창기엔 바다속으로 몰래 접근,치명타를 안기는 일이 다소 비겁하게 생각됐다.

그러나 근세 이후엔 자살특공대인 가미가제까지 등장했다.

잠수정은 16세기 이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어 미국 남북전쟁,크리미아 전쟁 등에 이용됐다.

1차세계대전 중엔 독일의 유보트가 맹위를 떨쳤다.

기술 발전에는 시행착오가 따랐다.

1925년부터 1939년까지 유럽에선 힌덴부르크비행선 공중폭발에 버금가는 잠수함 사고가 3번이나 발생했다.

실험중 익사한 사람도 무수했다.

1960년 해저 1만1천미터를 잠수하는 "트리에스테"가 개발된 데는 희생자의 공이 컸다.

"제6의 대륙" 바다에 관한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핵잠수함시대까지를 망라한다.

과학기술및 군사 문제를 깊숙히 파고들어 전문적인 느낌이 없지 않으나 다양한 원색 화보가 보는 즐거움을 준다.

1900년 제작된 석판화는 자가용 잠수함을 타고 유람하는 미래를 담고 있다.

물갈퀴를 처음 고안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바다의 조로(zoro)"를 원했던 해군 제독,코르크로 구명조끼를 만든 프랑스 신부 등 다양한 일화가 소개된다.

잠수함의 핵심 문제는 우주선 제작과도 연관된 만큼 기술 발전은 지속될 것이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