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화단에서도 중간에 장르를 바꾸면 죽도 밥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성이 남에게 어필을 하든 못하든 죽을때까지 한가지 정형화된 패턴만을 고집한다.

A화가는 평생 꽃만 다루고 B화가는 산,C화가는 얼굴만 그리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보면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인지 금세 알수 있다.

이렇게 볼때 우물을 다시 파며 인생에 승부를 건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임에 틀림없다.

22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상에서 개인전을 갖는 서양화가 손문자(57)씨는 뒤늦게 장르를 바꿔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낸 경우다.

그는 원래 흙으로 작품을 빚던 도예가였다.

20년이상 도예작업을 하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던 9년전 뒤늦게 회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림경력만 따지면 화단에서는 애송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도예로 다져진 예술적 감각 덕분에 회화분야에서 남다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손씨가 뒤늦게 장르를 바꾼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우선 도예로는 예술성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한마디로 도예쪽에 한계를 느낀 셈이다.

경기도 광주에 가서 훨훨 타오르는 불가마와 씨름해야하는 환경적 어려움도 새 장르로 눈을 돌리게 만든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평소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 회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게 더 큰 요인이다.

이번 전시회는 장르를 바꾼 손씨의 독특한 회화작품을 감상할수 있는 자리다.

전시타이틀은 "The Way".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출품작은 10~2백호짜리 40여점으로 프라하의 해골인형,아담과 이브의 실락원등을 소재로 끌어들였다.

구성주의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표현형식이나 전체적인 인상으로 보면 전형적인 큐비즘(입체파)시대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형식은 추상의 모습이지만 내용은 지극히 구상적인 세계를 담고 있는 다소 낯선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회화에 처음 뛰어든 90년대초.

그는 약간 구상적이며 전형적인 인상파화풍의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94년 파리에 머물면서 러시아 작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후 기하학적 구성주의로 전환했다.

초기에 다소 어색하게 보이던 인물들도 최근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화면을 차지한다.

인물의 구성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색채의 쓰임이나 조형적인 구도,인물의 다양한 구성에서 훨씬 성숙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안에는 색을 중첩해 입히면서 정겨운 마티에르를 얻어낸 상태에서 여러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

손씨는 66년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후 4년간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02)518-2115

< 윤기설 기자 upyks@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