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패션벤처밸리 동대문.남대문 시장에서 신흥 "거상(巨商)"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독특한 디자인의 "시장 브랜드"를 바탕으로 하루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의 도.소매 매출을 올려 재래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동.남대문 시장에서 시장브랜드의 거상으로 알려져 있는 상인들은 대략 40-50명선.

이들이 시장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상인마다 평균 5백명 이상의 고정 소매 및 도매손님을 확보할 정도로 탁월한 영업력을 자랑하고 있다.

시장관계자들은 "이들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가에 따라 국내 패션유행이 바뀐다"고 말한다.

또 자체 디자이너를 통해 만든 고유브랜드를 한단계 끌어 올려 내셔널브랜드로 키워 나가고 있다.

<> 신세대 거상들의 무기는 "전문성" =현재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서 돋보이는 디자인을 앞세워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브랜드로는 히어로스페이스(10대 남성복), 문군네(티셔츠), 튀는아이(신발), 보우(남성복) 등이 손꼽힌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디자인을 고집한다는 것.

또 이전 거상들이 바지, 스웨터와 같은 단품류만을 생산한데 비해 새로 부상하는 거상들은 10대정장, 유아용 가죽신발, 컬러가 화려한 T셔츠 등 다채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에 7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히어로스페이스"의 신용남 사장은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시장브랜드만이 생명력을 가질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군네"의 문인석 사장 역시 "시장환경이 달라져 종전처럼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시대는 끝났다"며 "디자이너브랜드의 희소성을 살려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전국화에 성공한 신흥 거상들 =시장에서 잔뼈가 굵어 내셔널브랜드를 키워 냄으로써 "패션사업가"로 도약한 상인들이 벌써 상당수에 이른다.

순수한 시장브랜드로 출발해 전국 체인을 형성하는데 성공, 인기를 끌고 있는 잠뱅이(남대문시장), TBJ(동대문시장), 옹골진(남대문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내셔널브랜드로 떠오른 시장브랜드로는 수비, 나크나인, 클라이드, 지피지기, GIA 등이 있다.

이들 브랜드는 동.남대문 시장에서 도매점포로 출발, 지금은 전국에 10~50개의 대리점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94년 신평화시장에서 장사를 시작, 현재 42개 전국대리점을 확보한 "수비"의 장세문 사장은 "도매장사를 통해 거래상을 다수 확보한 것이 전국화에 나설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장브랜드로 전국체인화에 성공한 상품중 대부분은 청바지와 같은 단품류에 한정되고 있다.

<> 내셔널브랜드를 꿈꾸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 ="제2의 잠뱅이"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40-50명에 이르는 거상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자체 생산공장을 보유할 정도로 기업화됐다.

시장상인들이 인정하는 거상브랜드로는 업셋진, 아이사랑, 루디아,민들레 등이 꼽힌다.

이들이 시장에 쏟아내는 물량은 브랜드마다 하루 6천~7천장 수준(니트 기준).

월매출액으로 따지면 25억~3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시장관계자들의 얘기다.

전국에 12개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업셋진"의 조상원 사장은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단가를 낮추고 이는 곧 가격경쟁력으로 연결돼 단골고객을 꾸준히 늘릴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전문가들은 "거상의 출현은 재래시장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양희 박사는 "거상들은 뛰어난 디자인 개발력과 제품 생산력을 통해 키워진다"며 "일본에서도 1970~80년대 성공한 맨션메이커(일본시장브랜드의 통칭)들이 전체 패션산업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고 설명했다.

최철규 기자 gray@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