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아닌 버스에서 국가공인 자격 시험이 처음으로 치러졌다.

근로자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빼앗지 않기 위해 각종 시험장비를 싣고 현장을 찾아가는 "이동검정 버스"가 가동된 것이다.

20일 오후 2시 4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국가스공사 본관앞.

미리 와 있던 이동검정버스 4대에서 가스기능사 필기시험이 시작됐다.

이 버스는 노트북컴퓨터와 주전산기(서버),비디오재생기,답안지판독기,프린터 등 첨단 시험장비를 갖춰 버스 안에서 원스톱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돼 있다.

노동부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으로 추진중인 "근로자 1인 2자격갖기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버스다.

버스 한대마다 10명씩 탑승한 가스공사의 기술직 직원들은 등받이에 설치된 접이식 책상을 펼쳤다.

응시생들의 얼굴마다 긴장감이 배어나왔다.

올해부터 자격증이 없는 기술직 사원은 대리로 승진할수 없는 데다 과장 또는 부장으로 승진할 때도 자격증 소지자에게만 가점을 주어 자격증이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사실상 퇴출대상이 돼 버린다.

그렇지만 막상 시험문제를 풀면서 응시자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가스기능사 시험에 대비해 회사 연수원에서 마련한 전문가 특강을 받은 데다 휴일도 없이 집에서 밤늦게까지 교재를 붙들고 씨름했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8월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이후 가스공사는 기술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격증 1백% 취득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96년까지는 기술직의 63.1%만이 자격증을 갖고 있었으나 현재는 84.7%로 높아져 있다.

자격증 취득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가스사고도 사라졌다.

"안전은 선택이 아닌 절대적 가치"라며 안전사고 예방을 강조해온 한갑수 사장의 의지가 주효했다.

1시간뒤인 3시40분께 시험이 끝났다.

버스에서 내려온 문선영 대리(32.인천생산기지)는 "종전 같으면 산업인력공단 지방사무소로 찾아가 검정원서를 내고 시험일까지 기다려야 했다"며 "출장검정서비스 덕택에 회사에서 무료로 시험을 볼 수 있어 편했다"고 말했다.

최준식 대리(33.서울지사)는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원서를 제출할 시간조차 없다"며 "근로자 1인2자격 갖기 운동으로 자격증 취득에 따른 불편이 크게 해소됐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들은 수험생이 제출한 답안지(OMR카드)를 모아 버스에 함께 실린 판독기에 집어넣었다.

강당에서 따로 시험을 본 51명의 답안지도 함께 들어갔다.

판독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수험번호 오기등 실수가 있는 지를 점검한뒤 컴퓨터에 저장된 정답과의 대조가 이뤄졌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자마자 프린터는 합격자 명단을 찍어냈다.

공단은 재확인을 거쳐 오후 4시30분께 합격자 명단을 1층 게시판에 공고했다.

이같이 신속한 검정절차는 종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통상적인 자격증 시험(정기검정)의 경우 필기시험을 치른 뒤 2주일이 지나야 합격여부를 알 수 있었다.

노동부 김재영 고용정책실장은 "앞으로 정보처리기사 등 컴퓨터와 관련된 32개 자격증 응시생은 이동버스에 실린 노트북PC를 활용,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연이어 볼 수 있다"며 "이같은 원스톱 검정서비스로 단 하루만에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 성남=최승욱 기자 swchoi@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