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프트와 라이 (하) ]

한국골퍼들(프로 포함)은 70%이상이 클럽의 라이가 자신의 체형에 맞지 않는 것을 쓰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키가 작은데도 거의 "업라이트"한 스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어떻든, 키가 작은 사람이 라이가 큰 클럽으로 꼿꼿이 서서 업라이트한 스윙을 하는 장면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드라이버샷을 할 때가 더욱 그렇다.

1970년대부터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일제 클럽중 대다수는 로프트를 6~8도 작게 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9번아이언의 로프트가 7번아이언정도의 로프트로 제작됐다는 뜻이다.

아이언은 비교적 탄도가 높은 구질이 나와야 하는데도 일제클럽에 익숙해지다 보니 탄도가 낮고 구름도 많게 되었다.

결국 일제클럽은 거리가 많이 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일제클럽은 또 샤프트도 미국등 타국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만들었다.

이는 골프에 대해 아는 것이 적고 가격과 거리만을 따지는 한국골퍼들을 우롱한 셈이 됐다.

어떤 이는 일본클럽은 동양인이 만들었으므로 한국골퍼의 체형에 맞는다는 무지한 말까지 한다.

이런 요소들이 대다수 한국골퍼들로 하여금 어프로치샷을 할때나 그린주위에서는 볼을 굴려서 그린에 올려놓는 소심한 플레이를 하게한 한 이유도 된 것이다.

아마추어들에게는 로프트보다는 라이가 더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스윙자세가 올바르다는 전제아래서다.

결국 올바른 자세를 갖춘뒤에 클럽을 몸에 맞추는 것이지,클럽에다가 몸을 맞출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한 클럽메이커가 한국에 대한 판매공작을 어떻게 했는지 공개하면 놀랄 일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것은 일단 미룬다.

그 대신 한국골프문화는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고 할수 있으니 그 경로를 잠시 살펴보자.

일본골프는 1900년대초 영국인에 의해 전해졌고 그 후에는 미국인에 의해 발전됐다.

교습방법이나 클럽제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1910년대 키큰 서양인들은 그들 체형에 맞는 높은 라이의 클럽으로 키작은 일본인들에게 업라이트한 스윙을 가르쳤다.

그 스윙이 일본인에 의해 한국에 전해졌으니 그로인해 오늘날 한국골퍼의 70~80%가 업라이트한 스윙을 하는 원인이 됐다.

1931년 일본인에 의해 한국최초의 서울컨트리클럽이 세워졌으나 때가 때인지라 한국인은 거의 출입할수 없었다.

2차세계대전중인 1933~1945년 모든 외국인에게 추방을 명령했던 일본본토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골프도 금지됐다.

그 후 반세기가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은 일본골프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체성이 없는 까닭인가, 일제선호 때문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전 미국PGA 티칭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