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한국계 은행들은 미국에서 영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겁니까"

최근 A은행 뉴욕 지점장이 본국 부임을 앞두고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에 인사를 갔다가 이런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뉴욕에서 지점장으로 근무한 것은 1년 6개월 남짓.

감독 당국인 뉴욕 FRB에서 볼 때는 "이제 말 좀 통하는가 싶었더니" 서울로 귀임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양호한 편이다.

올 초엔 국책 B은행의 지점장이 부임한지 꼭 1년만에 서울로 돌아갔다.

만 55세의 나이로 "명예 퇴직 대상"이라는 게 소환 이유였다.

FRB는 물론 뉴욕주 금융감독국 등이 한결같이 경악을 감추지 못한 대표적 졸속 인사로 회자됐다.

명예 퇴직 대상의 연령이 문제였다면 애당초 그를 뉴욕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계 은행들의 "이상한 인사"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작년 말엔 통합 출범한 C은행의 뉴욕 지점장이 6개월 남짓 만에 본점으로 옮겨갔다.

최근에는 이 은행의 뉴욕 현지법인 모 지점장이 부임 2개월도 안돼 서울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한국계 은행 지점장들의 평균 임기는 어림잡아 2년 남짓에 불과하다.

얼마전 D은행 지점장이 2년 6개월쯤 근무하고 귀임하게 되자 주변에서 "꽤 장수했다"고 부러워했을 정도다.

한국계 은행들의 "돌림빵" 인사에 현지 감독 당국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은 당연하다.

뉴욕은 세계의 내로라 하는 금융기관들이 모여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최전선 기지다.

영업 관행도 한국 내에서와는 판이하다.

뉴욕에 새로 부임한 뒤 최소한 1년 동안은 분위기 파악에 시간을 보내기에도 급급하다는 게 은행 주재원들의 전언이다.

이웃 일본을 비롯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다른 나라 은행들이 지점장 임기를 3년 이상 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2년여 전 IMF(국제통화기금)체제라는 불의의 외환 위기를 맞았던 이유 중 하나로 국제 금융무대에 대한 경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국제 금융의 최전선 사령탑 자리를 "경력 관리용 돌림빵" 용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은행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서도 "국제 금융의 노하우 축적"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