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비디오게임과 인류문명..김우창 <고려대 영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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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유망산업은 전자 컴퓨터 정보산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산업에 일본은 여러가지로 앞서있는 나라이지만 근년에는 전자게임 분야에서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수 있다.
최근의 외지는 소니의 새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2라는 비디오게임이 크게 히트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는 종전의 전자게임을 개량한 것이지만 리얼리즘과 기능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스크린 영상의 질은 영화수준이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경주 자동차에서 나오는 연기와 야구선수가 뛰며 일으키는 먼지도 볼수 있다.
3월초 도쿄에서 상품판매에 들어간 플레이스테이션2는 하룻밤 사이에 매진되고 발걸음이 늦었던 사람은 쿠폰만을 받아들고 귀가해야 했다.
가을에는 미국에서도 판매를 개시한다.
게임기는 3백72달러이고 게임프로그램은 10세트에 64달러에서 1백38달러라고 한다.
프로그램의 경우 판매가 개시된 주말의 예상판매량은 1백만 세트였다.
소니의 성공은 일본과 일본 국민들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경제적 가치만이 상품의 의미여야 하는 것일까.
플레이스테이션2는 경제적인 중요성을 아무리 크게 갖는다 하더라도 놀이 기계에 불과하다.
물론 놀이가 없는 삶이 삭막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놀이는 삶에 재미를 더해주고 두뇌 회전운동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일에서 경중을 가리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개발에 들어갔을 막대한 자금과 재능및 인력을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생각할때 그 성공을 높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특정한 제품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놀이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한껏 정치한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회사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러한 산업의 발달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산업은 정보산업이고 거기에 맞는 기업의 형태는 벤처기업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산업이 창출하는 제품들은 게임기와 상당히 유사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보가 많아지고 보편화되고 그 전달수단이 빨라지고 다양화되고 작업의 자동화와 원격 조종화가 촉진되고...
이러한 일들이 게임기의 정교화와 같은 차원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생활과 유통의 편의가 증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생활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발명은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 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이반 일리취는 일찍이 자동차가 사람에게 가져온 이득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숫자로 지적한 일이 있다.
자동차를 타는 시간과 자동차 값을 버는 데에 드는 시간,휘발유 값,보험료 등을 합쳐서 계산하면 미국인은 1년에 1천5백시간 동안 6천마일을 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자동차가 없던 시절 보행자의 속도와 비슷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계산을 궤변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기술과 산업 문제를 정치하게 계산하며 살아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을 그것이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대강이라도 평가하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갈수는 없는 일이다.
과학과 기술은 그 경이로운 발전 초기에 인류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지금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말이 됐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의미는 오로지 산업발전에 기여하는데 있다.
산업의 의미는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회사의 경영실적과 국민총생산 지수를 높이는데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이 진단하는 것처럼 시대가 농업시대에서 산업시대로,또 정보산업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라면 이 흐름을 역행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이러한 흐름은 공업생산에 대응하던 생활의 필요들이 이미 충족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생활의 편의 증진과 놀이의 개발이 저절로 경제 활동의 주안점이 된다.
그러나 필요가 충당됐다는 것은 세계 일부 지역의 경우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서조차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활의 질적 심화이다.
참으로 빈곤의 시대,공업생산의 시대가 갔다고 한다면 현명한 사회 경제 정책은 산업의 여력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돌리는 일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절실하고 의미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산업이 가장 확실한 이익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전자정보 산업에서도 전체 인류 생활의 향상에 도움이 될 일이 노다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는지 모른다.
이러한 영역은 아마 단기적인 일확천금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산업에 일본은 여러가지로 앞서있는 나라이지만 근년에는 전자게임 분야에서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수 있다.
최근의 외지는 소니의 새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2라는 비디오게임이 크게 히트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는 종전의 전자게임을 개량한 것이지만 리얼리즘과 기능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스크린 영상의 질은 영화수준이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경주 자동차에서 나오는 연기와 야구선수가 뛰며 일으키는 먼지도 볼수 있다.
3월초 도쿄에서 상품판매에 들어간 플레이스테이션2는 하룻밤 사이에 매진되고 발걸음이 늦었던 사람은 쿠폰만을 받아들고 귀가해야 했다.
가을에는 미국에서도 판매를 개시한다.
게임기는 3백72달러이고 게임프로그램은 10세트에 64달러에서 1백38달러라고 한다.
프로그램의 경우 판매가 개시된 주말의 예상판매량은 1백만 세트였다.
소니의 성공은 일본과 일본 국민들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경제적 가치만이 상품의 의미여야 하는 것일까.
플레이스테이션2는 경제적인 중요성을 아무리 크게 갖는다 하더라도 놀이 기계에 불과하다.
물론 놀이가 없는 삶이 삭막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놀이는 삶에 재미를 더해주고 두뇌 회전운동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일에서 경중을 가리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개발에 들어갔을 막대한 자금과 재능및 인력을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생각할때 그 성공을 높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특정한 제품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놀이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한껏 정치한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회사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러한 산업의 발달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산업은 정보산업이고 거기에 맞는 기업의 형태는 벤처기업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산업이 창출하는 제품들은 게임기와 상당히 유사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보가 많아지고 보편화되고 그 전달수단이 빨라지고 다양화되고 작업의 자동화와 원격 조종화가 촉진되고...
이러한 일들이 게임기의 정교화와 같은 차원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생활과 유통의 편의가 증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생활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발명은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 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이반 일리취는 일찍이 자동차가 사람에게 가져온 이득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숫자로 지적한 일이 있다.
자동차를 타는 시간과 자동차 값을 버는 데에 드는 시간,휘발유 값,보험료 등을 합쳐서 계산하면 미국인은 1년에 1천5백시간 동안 6천마일을 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자동차가 없던 시절 보행자의 속도와 비슷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계산을 궤변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기술과 산업 문제를 정치하게 계산하며 살아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을 그것이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대강이라도 평가하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갈수는 없는 일이다.
과학과 기술은 그 경이로운 발전 초기에 인류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지금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말이 됐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의미는 오로지 산업발전에 기여하는데 있다.
산업의 의미는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회사의 경영실적과 국민총생산 지수를 높이는데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이 진단하는 것처럼 시대가 농업시대에서 산업시대로,또 정보산업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라면 이 흐름을 역행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이러한 흐름은 공업생산에 대응하던 생활의 필요들이 이미 충족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생활의 편의 증진과 놀이의 개발이 저절로 경제 활동의 주안점이 된다.
그러나 필요가 충당됐다는 것은 세계 일부 지역의 경우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서조차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활의 질적 심화이다.
참으로 빈곤의 시대,공업생산의 시대가 갔다고 한다면 현명한 사회 경제 정책은 산업의 여력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돌리는 일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절실하고 의미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산업이 가장 확실한 이익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전자정보 산업에서도 전체 인류 생활의 향상에 도움이 될 일이 노다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는지 모른다.
이러한 영역은 아마 단기적인 일확천금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