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빨리 간파하고 싶다면 그들이 타는 자동차가 어떤 차인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의 두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닝이 타는 차를 보자.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룬 이 영화에서 아네트 베닝은 성공을 위해선 육체까지 이용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등장한다.

그녀가 타는 차는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미래형 RV 차량 M-Class 다.

1997년에 선보인 이 차는 단단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외관과 고급스런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RV를 선호하는 미국인에겐 드림카로 꼽힌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8천5백만원에 달하는 미국인의 드림카와 성공 욕망에 몸부림치는 아네트 베닝.이보다 더 좋은 만남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아네트 베닝의 무능한 남편으로 등장하는 케빈 스페이시는 어떤 차를 탈까.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답게 크라이슬러의 중형차를 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결심하는 순간 그는 세단을 팔아치우고 70년형 폰티액 스포츠카를 구입한다.

그에게 빨간색 폰티액 스포츠카는 젊은 시절의 꿈이자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욕망의 출구다.

월리엄 말론 감독의 공포영화 "헌티드 힐( House On Hunted Hill )"은 유령이 나오는 성에서 하룻밤을 견딘 자가 1백만달러를 갖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여기서 자동차는 딱 한번 등장한다.

성으로 초대받은 다섯 사람이 도착하는 장면에서다.

이때 그들을 모셔오는 차가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이다.

곧 죽음의 게임에 빠져들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마지막 서비스론 안성맞춤이다.

한국영화에서 차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영화는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 사건"이 있다.

이 영화는 주무대가 주유소이므로 자동차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신분과 재력을 나타내는 차를 타고 있다.

재벌 아들은 외제차,프로야구 선수는 스포츠카,소시민은 소형 경차다.

자동차는 한 인물의 캐릭터를 읽어내는 훌륭한 장치이자 도구다.

그것이 영화속 인물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건 간에.

고충길 < 화인커뮤티케이션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