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가이사의 몫 .. 신상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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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마태복음 22장21절은 참 좋다.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전혀 아는 바 없지만,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든 분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의 존재를 인정했다는게 좋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신은 존재하지않거나,존재한다면 착하지않거나 전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버트런드 러셀식 논리에 대한 답변이 되는 것인지,아닌지.어쨌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가이사(로마황제)의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다.
지난주 헌법재판소 판결로 불거진 과외논쟁은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정부의 영역과 시장의 영역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20년전 과외를 전면금지했던 사람들이나 "질좋고 값싸며 수준높은 과외를 저소득층 자녀도 받을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사람이나 따지고보면 초록이 동색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매사가 정부에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별로 다를게 없다고 본다.
과외문제는 정책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시장이라는 현실에 걸맞지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선 일깨워준다.
과외금지가 엄청난 폐단이 되고있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까닭은 바로 그런 점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이 경쟁이라는 점,돈을 벌려는 목적이 남보다 잘 살고 아들 딸도 어떻게든 공부 잘 시키려는데 있다는 주장은 감정적으로 내키지않지만 인정해야한다.
학교교육등 이른바 공교육의 실패에 따라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여건에서 법률로 이를 금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과외전면금지는 자녀교육권등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따지고보면 현실 곧 시장을 인정하라는 얘기고,콩도 팥도 모두 정부에서 놓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IMF사태등 여건변화도 겹친 결과이겠지만,어쨌든 현정권들어 정부의 역할이나 기능은 갈수록 커지는 일면이 없지않다.
저소득층 자녀의 과외비를 국고에서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장관의 말이 과연 현실화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그런 구상이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실업보험 및 국민연금확대,오는 10월부터 실시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등 사회보장제도를 늘려온 정책기조를 감안하더라도 그러하다.
정부가 여유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절대로 없다.
그러나 재정이 과연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총선과정에서도 국가채무논쟁이 벌어졌지만,현재의 재정상황은 결코 좋지않다.
IMF기준(GFSM)으로 본 정부채무는 직접 빌려쓴 1백8조원임에 분명하지만,공적자금조성에 따른 정부보증채무와 연금적자에 따른 이른바 묵시적 채무중 상당부분을 결국 재정에서 떠맡아야할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등 새로운 복지지출수요다.
4인가족 기준 93만원까지는 전액 재정에서 생계비를 보장해준다는 이른바 부의 소득세제를 도입해야할 때가 됐는 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취로사업임금 등은 최고 50%를 소득공제토록 하는 등 대상과 소득결정에도 문제가 없지 않은데다 자영사업자 소득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 제도를 과연 무리없이 운용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재정적자문제는 인기가 없더라도 단호한 정책의지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때,이런 유형의 새로운 복지성 재정지출제도가 과연 오늘의 상황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갈수록 정부영역이 커지는 원인이 정치인이나 관료에게만 있다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도 임금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했던 까닭인지,이것이 잘못돼도 정부,저것이 문제가 있어도 정부탓을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우리 모두 생각해봐야한다.
기회의 평등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결과의 평등까지 요구하는 듯한 뭔가 잘못돼있는 시각도 문제다.
바로 그런 의식은 결국 정부영역만 늘리게된다.
만사를 정부에서 챙겨야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되고 결국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불분명해지게 된다.
복지라는 이름의 재정지출확대가 나라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를 보면 명확해진다.
"복지병"에 걸리지 않으려면,재정파탄으로 인해 나라경제가 헤어나기 어려운 질곡에 빠지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한다.
미국(21%선)보다 크게 낮지도 않은 조세부담률(사회보장성경비 제외)을 더이상 높이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한다.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전혀 아는 바 없지만,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든 분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의 존재를 인정했다는게 좋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신은 존재하지않거나,존재한다면 착하지않거나 전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버트런드 러셀식 논리에 대한 답변이 되는 것인지,아닌지.어쨌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가이사(로마황제)의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다.
지난주 헌법재판소 판결로 불거진 과외논쟁은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정부의 영역과 시장의 영역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20년전 과외를 전면금지했던 사람들이나 "질좋고 값싸며 수준높은 과외를 저소득층 자녀도 받을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사람이나 따지고보면 초록이 동색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매사가 정부에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별로 다를게 없다고 본다.
과외문제는 정책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시장이라는 현실에 걸맞지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선 일깨워준다.
과외금지가 엄청난 폐단이 되고있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까닭은 바로 그런 점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이 경쟁이라는 점,돈을 벌려는 목적이 남보다 잘 살고 아들 딸도 어떻게든 공부 잘 시키려는데 있다는 주장은 감정적으로 내키지않지만 인정해야한다.
학교교육등 이른바 공교육의 실패에 따라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여건에서 법률로 이를 금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과외전면금지는 자녀교육권등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따지고보면 현실 곧 시장을 인정하라는 얘기고,콩도 팥도 모두 정부에서 놓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IMF사태등 여건변화도 겹친 결과이겠지만,어쨌든 현정권들어 정부의 역할이나 기능은 갈수록 커지는 일면이 없지않다.
저소득층 자녀의 과외비를 국고에서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장관의 말이 과연 현실화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그런 구상이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실업보험 및 국민연금확대,오는 10월부터 실시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등 사회보장제도를 늘려온 정책기조를 감안하더라도 그러하다.
정부가 여유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절대로 없다.
그러나 재정이 과연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총선과정에서도 국가채무논쟁이 벌어졌지만,현재의 재정상황은 결코 좋지않다.
IMF기준(GFSM)으로 본 정부채무는 직접 빌려쓴 1백8조원임에 분명하지만,공적자금조성에 따른 정부보증채무와 연금적자에 따른 이른바 묵시적 채무중 상당부분을 결국 재정에서 떠맡아야할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등 새로운 복지지출수요다.
4인가족 기준 93만원까지는 전액 재정에서 생계비를 보장해준다는 이른바 부의 소득세제를 도입해야할 때가 됐는 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취로사업임금 등은 최고 50%를 소득공제토록 하는 등 대상과 소득결정에도 문제가 없지 않은데다 자영사업자 소득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 제도를 과연 무리없이 운용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재정적자문제는 인기가 없더라도 단호한 정책의지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때,이런 유형의 새로운 복지성 재정지출제도가 과연 오늘의 상황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갈수록 정부영역이 커지는 원인이 정치인이나 관료에게만 있다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도 임금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했던 까닭인지,이것이 잘못돼도 정부,저것이 문제가 있어도 정부탓을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우리 모두 생각해봐야한다.
기회의 평등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결과의 평등까지 요구하는 듯한 뭔가 잘못돼있는 시각도 문제다.
바로 그런 의식은 결국 정부영역만 늘리게된다.
만사를 정부에서 챙겨야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되고 결국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불분명해지게 된다.
복지라는 이름의 재정지출확대가 나라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를 보면 명확해진다.
"복지병"에 걸리지 않으려면,재정파탄으로 인해 나라경제가 헤어나기 어려운 질곡에 빠지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한다.
미국(21%선)보다 크게 낮지도 않은 조세부담률(사회보장성경비 제외)을 더이상 높이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