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이 땅에서는 도자기 전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청자와 백자의 대결이다.

이 싸움은 백자의 승리로 끝났다.

고려 왕조를 무력으로 전복시킨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이데올로기 전환을 시도하면서 지방에 분원을 설치하고 백자발전을 이끌었다.

불교와 청자로 집약되는 전시대의 이념을 유교와 백자문화로 대치한 것이다.

이처럼 예술품에는 본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복잡다단한 문화사가 반영돼 있다.

동굴 속의 암각화에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출간된 "KOREAN ART BOOK"(전18권,도서출판 예경)은 미술로 비춰본 한국문화사의 대계라 할 수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를 탐색한 것이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들었다.

필진도 탄탄하다.

곽동석 국립공주박물관장을 비롯 최건 해강도자미술관 학예연구실장,김재열 호암미술관 부관장,윤열수 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정병모.이강근 경주대교수,박경식 단국대교수,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등 2~3세대 소장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1차분으로 나온 것은 첫권 "금동불"(곽동석 저,1만6천원)부터 "토기.청자"(최건 외 3인 공공저,전2권,각권 1만2천원)"백자.분청사기"(김재열 저,전2권,1만2천.1만원)"민화"(윤열수 저,전2권,각권 1만6천원)까지 7권.

회화와 고분미술 공예 서예 고건축 부문을 담은 11권은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된다.

기존의 도록들이 크고 무거운 데 비해 이 시리즈는 들고 다니기 편한 판형으로 만들어졌다.

도판만 모으고 해설을 뒤에 붙인 여타 도록과 달리 사진과 글을 나란히 실어 찾아보기 쉽게 했다.

답사길이나 박물관 미술관 갈 때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좋다.

하지만 포켓용이라고 해서 내용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오히려 한국 미술사의 모든 열쇠어를 다 만날 수 있다.

한국미의 원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첫권의 금동불에 얽힌 얘기부터 보자.

왼무릎 위에 오른다리를 걸치고 뺨에 오른 손가락을 살짝 댄 채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

6세기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약 1백년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은 가장 한국적인 보살상으로 꼽힌다.

반가좌라는 특이한 자세 때문에 얼굴과 팔 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고 흘러내리는 치마의 처리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반가사유상의 등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조각사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서민들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민화도 겉껍질을 벗기고 보면 그 속에 한국문화사의 튼실한 줄기가 들어앉아 있다.

민화는 시대적 상징성이 강한 그림이다.

둥근 것은 하늘이요 네모진 것은 땅,그 중간인 팔각형은 하늘과 땅 사이를 상징한다.

민화의 대형 병풍에 노란 닭 한 마리가 그려진 경우 이는 천계를 뜻한다고 한다.

그림의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계절과 시간도 알 수 있다.

민화는 예술지상주의가 아니라 장소와 쓰임새를 중시한 실용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민초의 애환과 풍자.해학이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민화는 시대의 후광을 받고 화려하게 피어난 정통 회화의 그늘 속에서 작고 초라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들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