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의 핵심 과제는 부실회사의 정리와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전자가 목숨을 살리기 위한 외과수술이라면 후자는 재활을 위한 물리치료에 비유할 수 있다.

지배구조의 개선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지배구조의 핵으로 부상한 사외이사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왜 그런가.

그 일차적인 진단은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서둘러 서구식 이사회제도를 도입한 결과 시행착오를 불가피하게 겪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사외이사의 역할과 자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고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 또한 미비하다는 것이다.

사외이사제는 회사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도입한 제도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제도다.

그리고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경영진을 견제하는 측면만 강조됐다.

그러다 보니 경영진의 입장에서 사외이사란 한마디로 골치 아픈 존재다.

견제를 하려면 감시를 해야 하고 감시를 하려면 회사의 사정에 정통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골치 아픈 존재로 인식하는 한 사외이사의 정보접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견제 측면만 강조된다면 사외이사는 결코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외이사가 자세한 정보에 근거한 경영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두 가지 극단적인 양상이 표출되고 있다.

첫째는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사실상 추천하는 대부분의 경우이다.

충분한 정보제공이 없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순응한다.

둘째의 극단은 경영진이 사외이사의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경우다.

일부 은행의 예를 보자.은행장이 아직도 "황제처럼 전횡"하려 한다는 사외이사의 선입견과 사외이사가 은행경영의 현실도 모르면서 "사사건건 시비만 건다"는 경영진의 선입견이 충돌한다.

사외이사제가 성공하려면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견제도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지원도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고 경영진과의 신뢰관계도 형성될 수 있다.

요컨대 사외이사는 주주와 경영진의 중간 중계탑과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

경영진을 지원하지 않으면 주주를 위해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이렇듯 사외이사는 견제와 지원이라는 역설적인 두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는 패러독스(역설)의 세계다.

그렇다면 특정분야의 전문지식 이외에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은 무엇일까.

미국의 소설가 휘츠 제럴드는 "일류의 지성을 가졌는가의 여부는 상반된 두개의 아이디어를 동시에 포용하면서도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능력의 핵심이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에는 영어의 스페셜리스트에 해당하는 전문가라는 단어는 있지만 프로페셔널에 해당하는 마땅한 단어는 없다.

구태여 번역한다면 프로정신이 충만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수월성 윤리 책임 독립성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설정하고 준수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성직자 의사 교수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은 가장 전통적인 프로페셔널이다.

이 중에서 교수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이 다수 기업의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본업과 사외이사로서 영위하는 부업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본업의 고객들은 자발적으로 이들의 서비스를 구한다.

그러나 사외이사의 고객인 상장회사는 국가로부터 강요된 사외이사를 "골치 아픈" 존재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사외이사는 견제와 지원 간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떠나 버리는 이치를 이해하는 지혜를 가진 프로페셔널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자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제로 이제는 사외이사를 보는 경영진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사외이사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를 기울일 상법상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영판단의 자료,즉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운영에 필요한 회사내의 인프라를 능동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특히 이사회 사무국의 기능을 확대하고 새로 설립된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만약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의 세부적인 요건에까지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spark311@ 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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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연대 경영학과 졸업
<>미 뉴욕대 박사(재무.금융)
<>미 남가주대 교수
<>미 뉴욕대 교수
<>한국선물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