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이를 적극 지지하고 ADB에 설치될 빈곤퇴치기금에 자금을 출연할 뜻을 밝혔다.
이에는 크게 다섯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첫째는 ADB의 신분 변화다.
ADB가 종래 아시아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산업은행에서 빈곤문제를 완화하는 아시아판 세계은행으로 변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ADB의 기능 전환이다.
아시아 개도국들의 체력향상에 주력하던 체육교사 역할에서 이제는 체질개선과 질병예방에 힘쓰는 양호교사 내지는 영양사로 역할을 바꿈을 의미한다.
경쟁을 위한 가격(가격)능력(edge)보다는 심신의 안정과 균형을 추구하기로 주안점이 바뀐 것이다.
셋째는 발전 개념의 재정립이다.
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또는 GDP성장률 등이 발전의 척도였다면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성숙이 더 중대한 발전의 척도로 대두되게 됐다.
넷째는 발전 전술의 변화다.
즉 전에는 우선적으로 소수 대기업과 정부기구를 배불려 그 풍요로움의 부스러기가 중산층과 서민층으로 흘러 넘쳐 떨어지게 하는 이른바 트릭클-다운(trickle-down) 전술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것이 부정부패 및 연줄 자본주의 그리고 경제개방성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제는 빈민 한 명 한 명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마이크로-렌딩(micro-lending)으로 전술이 바뀌고 있다.
다섯째는 발전 주체의 교체다.
즉 전에는 정부나 대기업 협회 등이 경제발전 주체였다면 이제는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다양하고 수많은 비정부기구가 발전의 주체로 더 중시되고 있다.
물론 ADB의 이 같은 사고 전환에 대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특히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ADB가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ADB에는 그 같은 대의를 실행에 옮길만한 인적 금전적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또 사회간접자본건설을 통한 경제성장이 아직도 더 시급하고 중요하며 효과적인 발전 방안이라는 것이다.
과거 산업은행 역할을 수행할 때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는데 새 기능에서는 또 오죽하겠느냐는 식의 의견도 덧붙였다.
이는 1997~98년 경제위기 당시 ADB가 아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기능을 발휘해보도록 하자는 견해가 일본에서 제기됐을 때 서방 세계가 IMF와의 경합 가능성을 들어 극력 반대했던 사례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능력이 미비하다 하여 가야만 할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특정 분야에서 과거 실적이 좋지 않았다 하여 다른 분야에서도 무능할 것이라는 추정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여러 서방 언론들을 비롯해 많은 경제전문가나 군사전문가들은 일본이며 중국 등에 심각한 불황사태가 도래하고 있다며 공동체 파괴적 실업 및 빈부격차 문제로 전쟁,내전,또는 폭동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와 중국의 대만침공 내지는 농민폭동을 우려하고 있다.
아시아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여기서 단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빈곤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탈북자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중국이며 북한의 공갈외교에 신경이 예민해진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아시아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단연코 거시경제적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미시사회적 분노관리다.
그런데 빈민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개혁이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전통적 노력들이 그간 항상 전달과정에서 연줄 자본주의와 부정부패로 퇴색됐다.
따라서 현재 대부분 아시아 개도국에게 가장 시급한 분노진정방책은 정치개혁이 유일한 셈이다.
같은 고통이라도 연줄 자본주의 체제에선 폭동으로 이어질 것이 진전된 민주주의 체제에선 고통분담의 허리띠 졸라매기로 이어진다.
ADB의 시도는 이렇게 민주화가 덜 된 아시아 지역에서 연줄 자본가와 부패 관료들을 우회해 시급한 불을 끄는 좋은 시도로 기대된다.
신동욱 전문위원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