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환경도시공학 >

지난주 건설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억제문제를 장관직을 걸고 대처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수도권문제의 심각성을 대통령은 옳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수도권은 지구상에 유례없는 공룡이다.

금세기 초 고작 인구가 25만명에 불과했던 작은 성곽도시 서울의 인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1천50만명이다.

주변지역까지 합치면 2천1백만명에 이르는 대도시권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인구의 반 가까이가 살고 있다.

인구규모나 인구밀도 측면에서 볼때 세계 제일이다.

그러나 덩치만 컸지 도시를 정비하고 기반시설을 갖추고 할 겨를도 없이 양적으로만 급성장해 왔기 때문에 지금 심각한 비만증에 걸려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모든 중추기능이 몰려 있다.

대학교,금융기관,대기업 본사,문화시설,심지어 온갖 "정보"마저 이곳에 몰려 있다.

과거 성장시대 초기에는 그나마 부족한 힘을 한 곳에 모아 키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선진국으로 넘어가려는 지금 이같은 국토 불균형문제가 우리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를 이렇게 좁게 활용하는 것은 얼마나 비능률적인가.

인구의 집적도가 높은 만큼 주택 교통 환경등 사회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수도권 내부의 교통체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도 연간 수조원에 이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려면 수십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히 천문학적인 짐이다.

돌이켜보면 60년대 이후 십수 차례에 걸쳐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책이 채택되고 추진됐었다.

그러나 항상 정치논리,경제논리에 밀려 꼬리를 내리곤 했다.

7월부터 공공기관의 신증축이 억제된다고 하는데 유사한 지침에 따라 과거 지방으로 내려갔던 공공기관들도 그동안 눈치보며 다시 올라오곤 했다.

수도권의 인구유발요인은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하므로 끊임없이 고용이 창출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핵심적인 규제대상은 공장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경제가 흔들려도 규제가 경제를 죽인다는 논리에 밀려 공장규제를 완화해 왔다.

지금 수도권 내에 대규모 공단이 많다.

무허가공장은 더 많다.

몇년 전에는 대기업들이 반도체 수출을 핑계삼아 밀어붙인 막후 로비 탓으로 수도권 정책이 크게 흔들렸었다.

어쩌면 기흥의 삼성 반도체단지는 수도권정책 실패의 표본일 것이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된 이후에도 경기도와 인천시가 노골적으로 수도권정책에 저항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성장을 억제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방을 고루 개발해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논리도 강하다.

대기업 공장,대학,각종 기능들을 전국적으로 배치하고 서울과 비슷한 수준의 편익시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금은 지방에 대규모 공단을 만들어 놓아도 분양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청와대 내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이 만들어졌는데도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대기업 본사들이 지방으로 거점을 옮긴다면 그 임팩트는 상당할 것이다.

외국의 대기업들은 아틀란타,시애틀 또는 밀라노,프랑크푸르트 등지에 본사를 두고 첨단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복판에 본사를 두고 여의도나 과천 또는 세종로의 눈치를 보며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관청 근처에서 서성거려야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치나 경제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수도권의 과밀문제 해결은 수도권을 정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앞으로 수도권은 서울 중심으로 크게는 80km 반경까지 서울생활권으로 확대될 것이다.

인구는 물론 각종 도시기능도 분화되고 재배치될 것이다.

이를테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중심구조에서 벗어나 다핵적공간구조로 변모될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 위성도시를 정비하고 주변에 신도시를 더 만들어야 한다.

현재 일반의 인식 중 잘못된 것은 신도시가 인구집중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신도시는 지금과 같이 서울 주변에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난개발을 막고 계획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8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산 분당 신도시가 인구집중 요인이 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의 공간구조를 지금과 같은 서울중심에서 탈피하려면 무엇보다 광역적 교통망이 구비돼야 한다.

수도권은 계속 제한적으로 정비해 나가면서 동시에 좀더 과감한 지방개발이 추진돼야 한다.

이것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이다.

< gyl@madang.aj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