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구원(KIET)의 재심요청에 대하여는 진심으로 그 용기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그러한 원장님을 모시고 있는 직원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실세(?)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다른 기관의 명예를 실추시켜도 좋을 만큼 용기를 낼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모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 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일부다.

경제사회연구회는 지난 3개월동안 연구기관 자체평가 보고서와 전문가들을 동원한 현장실사 자료를 종합,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연구실적과 경영내용을 평가했다.

평가결과는 연구기관들의 내년 사업비와 연구원장들의 연봉 조정에 기초자료로 쓰이게 된다.

따라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연구기관들의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

많은 국책연구기관들은 KIET측이 평가결과에 불복,연구기관간 순위를 임의로 조정하고 재심을 요청하기에 이르자 "누구는 입이 없어 말 못하고 있는 줄 아느냐"며 KIET측의 오만을 나무라고 있다.

사실 이번의 평가는 연구기관들이 그간의 잘못을 반성,얼마만큼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는지를 엿볼수 있다는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

2년전 감사원 특감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방만하고 부패한 경영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감사 결과 이들은 자체 수입규모를 축소보고해 예산을 초과 수령해 갔을 뿐 아니라,이 돈을 연구비가 아닌 해외여행경비 술값 등으로 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편법적인 수당신설,연구비 단가인상 등을 통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된 예산을 내돈처럼 펑펑 써온 사실도 적발됐다.

상당수 연구기관들은 주무부처가 미리 틀을 짠 정책을 합리화시키는 데만 연구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에따라 정부는 연구기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공표하고 이를 기관의 예산 등과 연계해 출연기관들의 병폐를 뜯어 고치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KIET측은 평가단의 지적에 대한 반성은커녕 "평가방법,평가위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공세를 펴고있다.

"우리도 평가결과에 대한 불만은 KIET 못지않게 많다.

하지만 게임에서 졌다고 재시합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레프리의 휘슬을 존중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글을 맺은 연구원의 자세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