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북 四象의학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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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동의학연구소가 지난 89년 펴낸 "동의학사전"을 보면 수록된 2만3천여개의 전문용어중 "사상의학"과 그 주창자인 "이제마"항목이 두드러지게 상세히 설명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체질학설"이라든지 "지금도 치료에 효과를 보임으로써 동의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설"이란 평가가 눈에 띈다.
이제마는 "동의학의 선구자"로 규정해 놓았다.
북한에서는 허준보다 오히려 이제마가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마(1837)는 함남 함흥에서 전주 이씨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젊어서 글공부는 물론 의약이나 역술에도 비범한 재주를 보였지만 기인행세를 하며 만주와 전국을 방랑하면서 의학에 몰두했다.
한때 군관(1888년)과 경남 진해 현감(1892년)을 맡기도 했으나 현감으로 재임하면서부터 병든 현민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연구해 오던 사상원리를 치료에 쓰기 시작한다.
1893년 서울로 돌아와 저술에 심혈을 기울여 1894년 내놓은 것이 사상의설연구서인 "동의수세보원"이다.
늙어서 고향에 돌아온 그는 보원국이란 약국을 열어 사상의학연구와 제자양성에 전념하면서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보완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람을 체격과 체질,장부의 허실,얼굴 생김새,성격,약에 대한 개체의 반응상태 등을 종합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분류했다.
사상에 따라 같은 병인이 작용해도 각각 다른 증상이 나타나므로 치료를 개별화해야 하고 체질에 따라 약도 써야한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요체다.
그는 각 체질에 따른 약도 처방해 놓았다.
한의학연구원이 이제마의 1백주기를 기념해 북한 고려의학과학교육원과 "사상의학"을 주제로 남북한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하고있다는 소식이다.
남한에서도 사상의학에 대한 관심은 높다.
인터넷 홈페이지만도 20여개가 된다.
어떻게 보면 아무나 사상의학을 거론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학술대회가 성사돼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제마의 사상의설을 남북공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체질학설"이라든지 "지금도 치료에 효과를 보임으로써 동의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설"이란 평가가 눈에 띈다.
이제마는 "동의학의 선구자"로 규정해 놓았다.
북한에서는 허준보다 오히려 이제마가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마(1837)는 함남 함흥에서 전주 이씨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젊어서 글공부는 물론 의약이나 역술에도 비범한 재주를 보였지만 기인행세를 하며 만주와 전국을 방랑하면서 의학에 몰두했다.
한때 군관(1888년)과 경남 진해 현감(1892년)을 맡기도 했으나 현감으로 재임하면서부터 병든 현민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연구해 오던 사상원리를 치료에 쓰기 시작한다.
1893년 서울로 돌아와 저술에 심혈을 기울여 1894년 내놓은 것이 사상의설연구서인 "동의수세보원"이다.
늙어서 고향에 돌아온 그는 보원국이란 약국을 열어 사상의학연구와 제자양성에 전념하면서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보완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람을 체격과 체질,장부의 허실,얼굴 생김새,성격,약에 대한 개체의 반응상태 등을 종합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분류했다.
사상에 따라 같은 병인이 작용해도 각각 다른 증상이 나타나므로 치료를 개별화해야 하고 체질에 따라 약도 써야한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요체다.
그는 각 체질에 따른 약도 처방해 놓았다.
한의학연구원이 이제마의 1백주기를 기념해 북한 고려의학과학교육원과 "사상의학"을 주제로 남북한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하고있다는 소식이다.
남한에서도 사상의학에 대한 관심은 높다.
인터넷 홈페이지만도 20여개가 된다.
어떻게 보면 아무나 사상의학을 거론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학술대회가 성사돼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제마의 사상의설을 남북공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