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마당] 모스크바의 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차창 밖으로 키 큰 자작나무들이 지나간다.
눈덮인 언덕에 포근히 안겨있는 마을의 정겨운 불빛과 함께.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속.박광진 씨는 반복되는 기차바퀴 소리를 들으며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기술을 얻기 위해 러시아를 찾은 지 열번째.1980년대 후반부터 드나들며 노력한 끝에 일부 기술은 얻었지만 핵심기술에선 아직 소득이 없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스크바역.밤이 되니 기온은 더 떨어졌다.
섭씨 영하 28도. 지인 2명과 술잔을 기울인 뒤 헤어졌다.
호텔로 가기 위해 차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차량통행마저 뜸해지고.그때 술에 약간 취했지만 점잖게 생긴 러시아인이 다가왔다.
택시가 파업중이니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고 귀띔해줬다.
자기 집에 가서 몸을 녹인 뒤 내일 아침에 가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곁들이면서.새벽까지 함께 보드카를 마시던 박사장은 그 러시아인이 대학교수이며 화학분야 권위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돕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박씨가 옴스크를 알게 된 것은 그뒤 다섯번을 더 방문해서였다.
우랄산맥 동쪽 오브강 상류에 있는 옴스크는 첨단군사기술의 보고.이곳의 박사들로부터 귀한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박씨는 환경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한기실업 사장.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매연처리용 화학기술과 폐수처리용 미생물기술.화생방 군사기술이 뛰어난 러시아에는 이런 기술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동안 방문회수가 40차례가 넘는다.
기술이 뛰어나면서도 로열티가 낮은 게 장점이었다.
문제는 제대로 된 기술을 찾는 것.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았다.
돈만 쓰고 허탕치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밤거리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그를 통해 모스크바대학의 박사들 여러 명을 소개받았고 옴스크의 과학자들도 알게 됐다.
몇몇은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한기실업을 다녀갔고 나타리 쥬코프 박사는 아예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제설제 매연처리기술 폐수처리용 화학약품 등 여러 종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도왔다.
사업화하는 데 수십억원의 자금과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러시아를 찾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벤처붐이 불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기초기술을 사업화하려는 러시아 연구소나 과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양국간 협력은 확대되고 있다.
서울 독산동의 보라정밀도 같은 예.이 회사가 선보인 소형 압전체변압기는 유리 코필로프 박사의 도움을 받은 것.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이면서 벤처기술기업인 크리아텍을 운영하고 있는 그 역시 보라정밀에서 몇달째 일하고 있다.
이밖에도 수십개 기업이 러시아인을 연구원으로 초빙해 첨단기술을 사업화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협력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박광진 사장은 지적한다.
박사나 과학자라고 맹신하면 안된다는 점.껍데기 기술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러시아 전문가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과 접촉해야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또 인간적인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러시아인들은 비밀경찰의 악몽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협력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깊이 사귀면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도와준다고.인간적인 사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기본인 듯하다.
김낙훈 기자 nhk@ked.co.kr
눈덮인 언덕에 포근히 안겨있는 마을의 정겨운 불빛과 함께.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속.박광진 씨는 반복되는 기차바퀴 소리를 들으며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기술을 얻기 위해 러시아를 찾은 지 열번째.1980년대 후반부터 드나들며 노력한 끝에 일부 기술은 얻었지만 핵심기술에선 아직 소득이 없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스크바역.밤이 되니 기온은 더 떨어졌다.
섭씨 영하 28도. 지인 2명과 술잔을 기울인 뒤 헤어졌다.
호텔로 가기 위해 차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차량통행마저 뜸해지고.그때 술에 약간 취했지만 점잖게 생긴 러시아인이 다가왔다.
택시가 파업중이니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고 귀띔해줬다.
자기 집에 가서 몸을 녹인 뒤 내일 아침에 가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곁들이면서.새벽까지 함께 보드카를 마시던 박사장은 그 러시아인이 대학교수이며 화학분야 권위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돕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박씨가 옴스크를 알게 된 것은 그뒤 다섯번을 더 방문해서였다.
우랄산맥 동쪽 오브강 상류에 있는 옴스크는 첨단군사기술의 보고.이곳의 박사들로부터 귀한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박씨는 환경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한기실업 사장.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매연처리용 화학기술과 폐수처리용 미생물기술.화생방 군사기술이 뛰어난 러시아에는 이런 기술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동안 방문회수가 40차례가 넘는다.
기술이 뛰어나면서도 로열티가 낮은 게 장점이었다.
문제는 제대로 된 기술을 찾는 것.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았다.
돈만 쓰고 허탕치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밤거리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그를 통해 모스크바대학의 박사들 여러 명을 소개받았고 옴스크의 과학자들도 알게 됐다.
몇몇은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한기실업을 다녀갔고 나타리 쥬코프 박사는 아예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제설제 매연처리기술 폐수처리용 화학약품 등 여러 종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도왔다.
사업화하는 데 수십억원의 자금과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러시아를 찾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벤처붐이 불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기초기술을 사업화하려는 러시아 연구소나 과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양국간 협력은 확대되고 있다.
서울 독산동의 보라정밀도 같은 예.이 회사가 선보인 소형 압전체변압기는 유리 코필로프 박사의 도움을 받은 것.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이면서 벤처기술기업인 크리아텍을 운영하고 있는 그 역시 보라정밀에서 몇달째 일하고 있다.
이밖에도 수십개 기업이 러시아인을 연구원으로 초빙해 첨단기술을 사업화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협력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박광진 사장은 지적한다.
박사나 과학자라고 맹신하면 안된다는 점.껍데기 기술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러시아 전문가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과 접촉해야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또 인간적인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러시아인들은 비밀경찰의 악몽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협력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깊이 사귀면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도와준다고.인간적인 사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기본인 듯하다.
김낙훈 기자 nh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