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초로 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문민정부 말기인 지난 97년 여름.

당시 서울지검 외사부는 로비스트 최만석 호기춘씨의 불법 외환거래 의혹 등의 첩보를 입수,자금흐름을 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내사는 금새 벽에 부딪쳤다.

그때도 미국 영주권자인 최씨가 지금처럼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또 최.호씨가 알스톰사로부터 커미션을 받은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97년하반기 검찰은 프랑스 사법당국에 수사공조 요청을 했으나 현지 법률 등을 이유로 거부당해 내사는 더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뒤이어 TGV 차량 도입시기를 둘러싸고 알스톰사와 우리 정부간에 위약금 시비가 불거져 나온 것도 수사지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검찰로선 섣불리 수사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내사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교착상태에 봉착한 셈이다.

게다가 지난98년 3월 서울지검 외사부에서 내사를 맡았던 담당검사까지 정기인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따라 이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담당하게 됐다.

대검 관계자는 "정식으로 입건한 사건이 아니라서 후임검사에게 승계하지 않았고 사안의 성격상 대검에서 내사를 계속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따라 자료가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대검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검찰수뇌부의 또다른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대검이 97년 관련자료를 가져가는 바람에 내사가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당시 검찰 수뇌부와 대검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그 이후 2년이상 대검 중수부에서 장기내사 상태로 은밀한 물밑 추적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던중 최 호 씨의 커미션 1천1백만달러 수수 사실이 확인되고 호씨의 범죄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의 공소시효(5년)가 다 돼가자 검찰은 호씨를 구속,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 정대인 기자 bigman@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