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위기는 국경이 없다.

소가족중심인 현대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얼마전 개봉된 "아메리칸 뷰티"는 직장은 물론 가정에서조차 천대받는 40대의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딸 친구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우리로선 윤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다분히 서구적인 착상이다.

13일 개봉하는 일본영화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 ?)는 같은 중년의 위기를 다룬 영화지만 "아메리칸 뷰티"보다 훨씬 우리 정서에 와닿는 내용이다.

사교댄스를 소재로 40대초반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수작이다.

42세인 스기야마 쇼헤이(야쿠쇼 고지).

20대 후반에 결혼해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대기업 경리과장으로 회사도 번듯하고 10여년간 저축한 보람으로 집도 장만해 남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남자다.

하지만 왠지 모를 삶의 "공허감"이 밀려온다.

전철 차창으로 그녀를 본 순간부터...

스기야마는 퇴근길 전철 차창을 통해 댄스교습소 창문에 서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매일 바라본다.

마이(구사카리 다미요)란 이름의 그 여인은 세계댄스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댄스교습소 강사.

그녀에게 끌려 어느 틈엔가 그의 발걸음은 댄스교습소로 향한다.

의사의 권유로 댄스를 배우는 뚱보 다나카,수다스러운 핫도리,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교습소에 다니는 회사동료 아오키(다케나카 나오토)등과 함께 그는 점차 사교댄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어지자 사립탐정을 고용한다.

스기야마는 어느날 용기를 내 마이에게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마이로부터 댄스를 배우고 싶지만 춤을 너무 못춘다는 이유로 그는 구박당한다.

그는 모멸감 때문에 더욱 댄스에 열을 올린다.

"당신과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멋진 댄스를 추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교댄스에 대한 이미지는 일본에서도 극히 부정적이다.

권태로운 삶에 회의감을 느낀 주인공이 마이에 끌려 사교댄스를 배우는 행위는 일종의 일탈이다.

샐러리맨 가장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본 "현실에서의 탈출 내지 몸부림"이다.

스기야마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사교댄스를 추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일탈행위는 일본적인 사회구조의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마이를 좋아하지만 "선"을 절대로 넘지 않는다.

단지 사교댄스를 배우는데 만족한다.

이런 점에서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 사교댄스에 대한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바뀌게 된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한때 사교댄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에서 2백20여만명,미국에서 1백90여만명이 관람하고 20여개 국가에 수출됐다.

1997년 일본 아카데미상 13개부문을 휩쓸었고 시애틀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런던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일본영화 개방이전부터 대학가와 영화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비디오가 불법 유통돼 "러브레터"와 인기순위 1,2위를 다툴 정도로 알려진 영화다.

조연배우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이 너무 인위적이어서 눈에 거슬리는 면이 있지만 단순한 소재를 풀어나가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성구 기자 sklee@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