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정부에 대한 대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경제부처들이 개혁을 빌미로 시대흐름이나 비즈니스현실을 무시한 정책을 남발하기 때문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재계는 또 "경제관료들은 시장경제를 촉진한다면서도 내용적으론 과거 관치경제시대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개혁을 앞세운 교묘한 신관치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려는 인상이 짙다"고 비판한다.

자가당착적인 정책발상도 기업들의 대표적인 불만대상이다.

이를테면 정부관할인 공기업민영화에 대해선 "국익"과 "증시상황"을 빌미로 차일피일 미루면서 기업구조조정에 대해선 증시 등 자금동향을 무시한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글로벌경쟁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민간기업개혁에 직접 팔을 걷어붙일 수 밖에 없다는 정부가 막상 각종 제도운영과 발상은 대부분 과거형 그대로여서 기업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든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 아날로그식 벤처투자 자제령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9일 열린 4대 부문 개혁추진보고회의에서 대기업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문어발식 기업확장과 지배의 수단이 돼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재계는 이에 대해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수직적 관계로 보는 종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미국의 IBM과 인텔 같은 대기업에서도 자기분야와 관련된 핵심업종엔 벤처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며 이번 자제령은 아날로그식 논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이중규제인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지정제도 =30대 대기업중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기업이 상당수 이르는데도 정부는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지정제도의 존속을 고집하고 있다.

전경련은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부채비율 2백% 제한, 결합재무제표 도입, 금융기관과의 재무구조개선약정 등 제재규정이 많은데도 별도의 30대 대기업 지정제도를 유지하려는 것은 이중규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규제로 외국투자기업이 30대 대기업에 포함돼 불이익을 받을까봐 한국에 투자하지 않고 제3국에 투자하는 사례마저 발생하고 있다고 재계는 말했다.

<> 무리한 출자총액 20조원 감축 =재계는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30대 대기업의 출자총액제도(순자산의 25% 이상을 출자하면 제재)도 무리한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제도에 맞춰 출자총액을 줄이려면 20조원 어치의 주식이 한꺼번에 물량으로 나와 가뜩이나 침체된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재계는 우려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출자총액제도 시행으로 대기업들의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사업체 신설이나 첨단산업 진출이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대기업들은 출자총액제도 실시와 주가 하락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것을 걱정했다.

<> 겉으론 시장자율, 속으론 관치 =정부가 민간기업의 석유판매가격 결정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도 관치경제의 전형이다.

정부는 최근 휘발유 등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서 세금인상분 만큼을 최종가격에서 내리라고 정유사들에 지시했다.

정부는 지난 97년부터 유가를 자율화해 놓고도 물가관리를 명목으로 유가결정에 간섭하고 있다.

<> 비현실적인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 =박태준 국무총리와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재계가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지방에 사업인허가, 금융업무 등을 처리할 수 있는 경제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상태에서 본사를 옮기는 것은 오히려 기업경영의 비용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정구학 기자 cg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