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 < 소설가 hannak3@hanmail.net >

요즘 내가 인생공부 삼아 일나가는 곳은 외주 드라마 제작하는 곳, 점심때쯤 어슬렁어슬렁 나가 어제 하던 기획안 펼치고 열심히 일하는 척 하는 곳이다.

나를 드라마 작가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노트북 앞에서 뭔가 열심히 하는 척하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어서 어서 일하고 좋은 대본 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살죠.

직원 중 하나는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열심히 정보를 준다.

저 같은 캐릭터 드라마에 쓰면 좋을 텐데요.

나는 진지한 척 끄덕인다.

참고할게요.

내 앞엔 누가 또 있나.

연 이틀 날밤 새며 스토리 짜내는 작가팀,제작비 계산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는 매니저,욱하는 성질에 전화통 붙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조 감독,배경음악이 그게 뭐냐는 여론에 의기소침해진 음향감독, 하루에 한가지씩 잃어버리는 건망증 심한 팀장, 방금전 대본 안 좋다고 혼난 작가 지망생.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굽어보며 회전의자에 앉아 화를 삭이고 있는 사장이 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바쁘지 않은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바쁘다.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실은 청탁 온 원고기일 맞추느라 끙끙대는 나.

식사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나.

일이 안돼 전화기라도 부술 것 같이 화가 난 제작부장 언니 하소연 들어주는 나.

저- 언니,하면서 찾아오는 경리아가씨 인생상담 해주는 나.

사무실에 나가 무슨 일하냐고 물어오면 대단히 중요한 일 하는 척 하는 나.

통유리창 밖으론 늦은 봄비가 타악기처럼 경쾌하게 들이치고 있다.

지금 막 저녁식사가 배달되었다.

그중 짬뽕 곱배기가 내 몫이다.

바쁘게 짬뽕을 먹다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타이틀은 "정다운 사무실", 인간미 넘치고(?) 놀기 좋아하는 노처녀 역이라면 내가 그중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