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대부분 개도국 통화가치가 일제히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이번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환율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중남미, 동구를 비롯한 대부분 개도국들의 미 달러화에 대한 통화 가치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금리인상 시기에 접어든 1년전에 비해 평균 10% 정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중에서는 필리핀 페소화가 9.6%나 떨어졌고 태국 바트화 5.8%,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9.6% 하락했다.

특히 태국 바트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지난주 이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최근들어 통화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폴란드 쥴로티화, 헝가리 포린트화를 비롯한 동구 국가들의 통화는 평균 15%나 급락했다.

콜롬비아 페소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도 평균 12%나 하락했다.

개도국 통화중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를 제외하고 통화 가치가 상승한 국가는 한국 원화가 8.6%로 제일 크고 대만 달러화 6.5%, 이스라엘 쉐켈화가 1.0%로 3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개도국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금리인상 조치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동안 풍부한 국제유동성으로 가리워져 있던 개도국들의 금융 및 경제위험이 선진국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점차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처럼 글로벌 투자, 펀드투자가 보편화된 시대에 있어서는 국제유동성이 위축되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 투자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할 수밖에 없다.

국제기채시장에서 개도국들이 부담하는 가산금리가 1년전에 비해 평균 0.4%포인트 정도 상승하고 있는데서 잘 입증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개도국들의 경제회복과 개혁성과가 일종의 "의제된(disguised) 축복"의 성격이 강함을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즉 98년 9월말 미국의 세차례 금리인하 조치 이후 풍부해진 국제유동성을 바탕으로 주가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개도국들의 금융 혹은 경제위험이 위장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앞으로 국제금리의 인상가능성은 남아 있는 상태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개도국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경제위기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