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인 경로를 거치는 국내 금도매시장의 공급과 유통과정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 98년 IMF외환위기를 극복하기위해 장롱속 돌반지까지 긁어모으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사실상 밀수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금괴를 불법 유통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명의만 빌려준 "바지"(실체는 없고 서류상 이름만 대여하는 업체나 업주)들은 끊임없이 적발,검거되고 있으나 이들을 뒤에서 조정하는 자본주(금괴 실거래자)들은 계속 장막에 가려진채 단속망을 피해가고 있다.

더구나 이들 유통조직망이 국내굴지의 종합상사 등을 통해 수출용 원자재로 금괴를 도입,국내시장에 몰래 유출시키기까지 가짜 수출계약서가 버젓이 나돌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은행은 금구매승인서나 내국신용장을 마구 발급했다.

<>배후에 자본주가 있다=작년부터 27개의 업체가 관세청에 적발됐으나 계속 불법물량이 나돌고 있는 것은 "바지"사장들만 구속되기 때문이라는게 금유통업계와 관세청조사팀의 설명이다.

자본주들은 바지업체로 한 곳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심한 경우 몇곳의 바지를 내세워 합법거래를 가장하기 때문에 실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적발이 돼도 바지업체들은 스스로 폐업을 하거나 도주해버린다.

또 검거돼도 자본주들이 뒤를 봐주거나 금괴를 국내시장에 유통시키는데 따른 이익금(부가세 10% 부분)을 일정비율로 나눠갖기 때문에 불법유통.탈세 혐의는 혼자 뒤집어 쓴다는 것이다.

<>은행도 관련의혹=국제 금거래는 현금을 주고받는 매매가 아니다.

통상 수입업체(종합상사)가 금을 도입,자본주나 기타 정상적인 유통업체가 금괴를 현금으로 사들이지만 수입업체는 해외의 수출업체에 3,6,9개월짜리 "유산스"(외상)어음을 준다.

일부 종합상사가 금거래에 열심인 것은 도입물량이 많아 외형이 커질수록 금리차를 많이 먹기 때문이다.

외상으로 도입,현금으로 내다팔면서 금거래 외형만큼의 자금을 금리부담없이 활용하는 것이다.

이때 종합상사는 수출계약서와 구매요청서를 받고 금괴를 넘겨주는데 이 서류가 가짜라는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바지업체와 거래하는 은행은 이 서류를 보고 구매승인서를 발급해준다.

밀수와 같은 수출용금의 불법유통이 반복되는 것은 은행이 이같은 서류를 계속발급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은행 관계자는 실적올리기에 급급,"진위를 가리지 못했다"며 검은결탁은 부인할 수 있으나 최소한 불법을 조장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다.

<>문제점=금유통 과정을 잘아는 일부 업계 관계자는 불법유통의 전모를 대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금괴불법유통을 근절하겠다며 나선 관세청도 일부 제한적인 전문가들만으로는 이 과정을 모두 밝혀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구나 종합상사 은행 등이 관련된 유통과정에서 관련 서류들이 대부분 "외형상 정상"상태이기 때문에 불법거래를 가려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수백억원대의 국세가 탈루되는 구조적인 불법유통에 대해 국세청 등이 전모를 모르고 있거나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어 불법을 방기한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 허원순기자 huhws@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