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개편 청사진 보여라..장세진 <고려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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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국이 그동안 추진해온 구조조정이 지극히 형식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대기업 부채비율의 축소는 대부분 계열사들의 상호출자에 따른 숫자놀음에 불과하며 경기회복도 세계적인 호황기조로 인한 외생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정작 중요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금융권 전반에 걸친 부실은 그 정도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무디스의 지적 중 가장 뼈아픈 것은 과연 한국정부가 금융구조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물론 부채에 의존해 무리한 확장을 벌여온 재벌과 투자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고 대출해준 금융권에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기관의 투자심사기능을 앗아가 버리고 소수 정부관리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좌우됐던 경제운영시스템에 있었다.
올 초 3조원의 혈세가 투입된데 이어 다시 5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하는 투신권 부실화의 시발도 역시 과거 증권시장의 안정이란 미명아래 이들로 하여금 강제로 주식을 사들이게 했던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다.
금융연구원은 그동안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86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향후 42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관리들이 선호하는 이 "공적자금"이란 모호한 용어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을 의미한다.
물론 그 중 일부는 회수가능하지만 총 1백28조원의 공적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쓰여진다는 것은 사실상 4천5백만명의 국민이 각각 2백80만원씩 세금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표를 들을 때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과연 이것이 전부인가""이렇게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붇고도 몇년 후 아니 몇달 후 또다시 부실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심은 그동안 86조원의 "세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의 체질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선진국 은행에 비해 고객당 점포수가 3배 또는 4배 이상 많다.
이들은 결국 인수합병을 통해 효율화를 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발적인 구제노력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투입된 공적자금을 수억원대의 명예퇴직 비용으로 쓰는 등 명백한 도덕적 해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증권사와 투신사들은 고객의 자산을 유용하거나 또는 고객에게 부실채권을 떠넘기는 사실상 범죄행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과거와 같이 금융산업의 운영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하도록 청사진을 제공하고 불법적인 자금운용을 막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최근에 보여준 행동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오게 한다.
얼마 전까지 더 이상의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공언했던 투신권에 추가적인 자금투입을 결정한 것은 정부가 투신권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거나 혹은 고의로 부실의 실체를 감추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의 한 고위간부는 얼마전 폭락하는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투신사가 주식을 사들이도록 하자는 위험한 발상을 하기도 했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1982년 외환위기를 겪고 급격한 구조조정의 결과 현재 안정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칠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칠레의 외환위기는 한국의 외환위기와 유사하게 대기업 집단들이 계열은행을 동원해 계열사에 무분별한 대출을 해준 것에 기인했다.
외환위기 후 칠레정부는 부실화된 은행을 구제해주었지만 그에 앞서 철저한 구조조정을 선행했다.
모든 금융기관이 계열사에 대출하거나 계열사의 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했고 구제금융의 결과 국유화된 은행들을 다시 민영화하기 이전에 인수합병을 통한 합리화를 꾀했다.
또한 국영연금제도를 민영화시켜 국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연금관리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칠레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공적자금의 투입 이전에 금융산업구조 개편에 대해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철저한 자구노력이 선행됐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금융산업 자체의 변화 없이는 금번의 공적자금 투입 후에도 언제라도 같은 부실이 재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schang@ korea.ac.kr
---------------------------------------------------------------
<> 필자 약력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
<>뉴욕대 조교수
<>주요저서:경영전략,글로벌 경영
대기업 부채비율의 축소는 대부분 계열사들의 상호출자에 따른 숫자놀음에 불과하며 경기회복도 세계적인 호황기조로 인한 외생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정작 중요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금융권 전반에 걸친 부실은 그 정도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무디스의 지적 중 가장 뼈아픈 것은 과연 한국정부가 금융구조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물론 부채에 의존해 무리한 확장을 벌여온 재벌과 투자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고 대출해준 금융권에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기관의 투자심사기능을 앗아가 버리고 소수 정부관리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좌우됐던 경제운영시스템에 있었다.
올 초 3조원의 혈세가 투입된데 이어 다시 5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하는 투신권 부실화의 시발도 역시 과거 증권시장의 안정이란 미명아래 이들로 하여금 강제로 주식을 사들이게 했던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다.
금융연구원은 그동안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86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향후 42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관리들이 선호하는 이 "공적자금"이란 모호한 용어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을 의미한다.
물론 그 중 일부는 회수가능하지만 총 1백28조원의 공적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쓰여진다는 것은 사실상 4천5백만명의 국민이 각각 2백80만원씩 세금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표를 들을 때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과연 이것이 전부인가""이렇게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붇고도 몇년 후 아니 몇달 후 또다시 부실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심은 그동안 86조원의 "세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의 체질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선진국 은행에 비해 고객당 점포수가 3배 또는 4배 이상 많다.
이들은 결국 인수합병을 통해 효율화를 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발적인 구제노력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투입된 공적자금을 수억원대의 명예퇴직 비용으로 쓰는 등 명백한 도덕적 해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증권사와 투신사들은 고객의 자산을 유용하거나 또는 고객에게 부실채권을 떠넘기는 사실상 범죄행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과거와 같이 금융산업의 운영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하도록 청사진을 제공하고 불법적인 자금운용을 막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최근에 보여준 행동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오게 한다.
얼마 전까지 더 이상의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공언했던 투신권에 추가적인 자금투입을 결정한 것은 정부가 투신권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거나 혹은 고의로 부실의 실체를 감추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의 한 고위간부는 얼마전 폭락하는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투신사가 주식을 사들이도록 하자는 위험한 발상을 하기도 했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1982년 외환위기를 겪고 급격한 구조조정의 결과 현재 안정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칠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칠레의 외환위기는 한국의 외환위기와 유사하게 대기업 집단들이 계열은행을 동원해 계열사에 무분별한 대출을 해준 것에 기인했다.
외환위기 후 칠레정부는 부실화된 은행을 구제해주었지만 그에 앞서 철저한 구조조정을 선행했다.
모든 금융기관이 계열사에 대출하거나 계열사의 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했고 구제금융의 결과 국유화된 은행들을 다시 민영화하기 이전에 인수합병을 통한 합리화를 꾀했다.
또한 국영연금제도를 민영화시켜 국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연금관리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칠레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공적자금의 투입 이전에 금융산업구조 개편에 대해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철저한 자구노력이 선행됐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금융산업 자체의 변화 없이는 금번의 공적자금 투입 후에도 언제라도 같은 부실이 재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schang@ 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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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
<>뉴욕대 조교수
<>주요저서:경영전략,글로벌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