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21세기 글로벌화의 명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리고 있는 미국 경제전략연구소(ESI)주최의 워싱턴 국제포럼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행한 위성연설의 제목이다.

우선 김 대통령은 글로벌시대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혜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예로 들면 쉬워진다고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외국기업도 한국에 있으면 한국기업이고 한국기업도 해외에 있으면 외국기업"이라는 자신의 등록상표적( trademark ) 표현을 써가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천개가 넘는 외국기업이 1백55억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고 자랑했다.

결국 한국이 지난 2년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글로벌화에 적응하고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김 대통령이 글로벌화의 밝은 면만을 부각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연설은 글로벌화가 몰고온 어두운 면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른바 선.후진국의 "정보격차( digital divide )"는 국가간 적대적 대립을 조장,세계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생존을 위한 빈국들의 환경파괴와 난개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은 헤지펀드와 단기성 투기자금의 폐해도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부정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하루 1조달러 이상의 외환이 거래되는 글로벌금융시대에 단일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고 강조한 김 대통령은 아시아 남미 러시아의 외환위기를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국제금융기관 상호간 정보교환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모니터링 채널( monitoring channel )"의 구축을 제안했다.

김 대통령은 또 "외형적 효율성과 물질적 풍요만 부각시킨 글로벌화와 정보화는 정신문화 경시와 휴머니즘의 상실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김 대통령의 연설은 ESI가 내건 "글로벌화,그리고 정보화"에 걸맞은,잘 요약된 명연설이었다는 게 이곳 청중의 반응이다.

워싱턴에서 김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예정된 남북정상회담도 한몫을 했다.

청중 가운데에는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끼어 있었다.

김 대통령의 연설은 개막선언(현지시간 15일 오전8시)에 바로 이어지게 짜여 있었다.

회의 개막전 이른 아침이라 텅빈 강당이었지만 미국 통신기술자들은 한국측과 오디오 및 비디오 상태를 점검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위성이 끊기는 경우에 대비,미국측은 김 대통령 연설대에 비상전화를 설치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것도 안심이 안되었던지 미국측 기술자는 전화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 한국쪽에서 전화를 거는 것이 좋겠다는 세심한 요청까지 했다.

통신라인의 정체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자면 한국쪽에서 거는 것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도 이를 수긍,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는 소리를 기자는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전대비에도 불구하고 위성사고가 발생했다.

4분정도 계속되던 김 대통령의 위성화면은 멈춰지고 이홍구 주미대사가 이를 대독해야 했다.

위성사고의 원인이 미국쪽에 있었는지 한국쪽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쌍방을 연결하는 과정에 8단계가 있기 때문에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통화가 되던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재연해야 가능하며 이를 분석하는 데만 한달이 걸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고원인규명의 기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ESI 소장은 청중에 "한국쪽에 문제가 있어 위성연설이 어렵게 됐다"고 단정적으로 설명해 버렸다.

"올해안으로 한국은 인터넷 인구가 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천만명을 넘어설 것이며 외국언론은 한국을 인터넷보급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라고 평가한다"는 김 대통령의 연설에 묘한 찬물을 끼얹는 대목이었다.

bjnyang@ 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