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 < 소설가 . hannak3@hanmail.net >

지난해 이맘때 남도의 한 마을에서 하숙을 산 적이 있다.

뜰에는 갖가지 계절꽃이 피고,마당을 가로지른 전깃줄에는 작은 새들이 와서 울고,70년 된 안채는 도시의 저 천박한 모텔들과 비할 데 없이 정갈한 한옥집이다.

주인집 할머니는 이따금 누룽지나 삶은 옥수수를 가져와 독려하곤 했다.

"서울아가씨,이거 먹고 글씨 잘 써어-"

그런 인심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시골집 정취에 빠져 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스며드는 창호지 문,손님이 청하면 저녁내 피워주는 군불,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앞산에서 피어오르는 싱싱한 산안개...

나는 집에 약속한 일주일만!을 까맣게 잊고 한 달에 달 반을 그 집에 머물렀다.

할머니를 따라 들에도 나가고, 저녁이면 그 집 큰아들과 장기를 두고,아기엄마와 장을 봐다 조기도 구워먹고 찌개도 같이 끓여먹던 정답던 시절이다.

그리곤 어느덧 서울로 올라갈 날이 돌아왔다.

그날 할머니는 아침부터 밭에 나가 돌아오질 않았다.

나 떠나는 걸 보지 않으려던 할머니는 결국 큰아들 화물차에 올라 앉았다.

"잘 가요,잘 가요..."

갓난장이를 업은 며느리는 울먹이며 하염없이 손을 흔든다.

호젓한 국도를 돌아 도시로 나가는 길,차안의 누구도 말이 없다.

나는 소리없이 울먹이고,할머니는 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참고,아들은 착잡한 얼굴로 운전만 하고 있다.

아아,이쩌다 이렇게 정이 들어버렸나.

이런 기이한 이별을 겪은 기억이 전에는 없다.

세 사람 모두 이 이상하게 들어버린 정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있다.

그렇게 터미널에 닿았을 때 내 손에는 아들이 끊어준 차표가 들려있고 할머니 가슴에는 내가 사드린 두유 한 상자가 정표처럼 안겨있다.

"전화해,전화해,서울 아가씨..."

할머니의 마지막 그 얼굴은 분명,"할게요 꼭 할게요"하는 나처럼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그 이별의 장면은 며칠째 작업 끝에 지칠 대로 지친 나를, 내 눈을 뜨겁게 충혈시킨다.

옆에 있던 후배가 나를 툭 친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글쎄...

내가 왜 그러는지 시골의 정다운 그 사람들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