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연일 위기신호를 보내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상위 10개 종목을 제외한 종합주가지수가 97년 말에 비해 34.42포인트 하락한 341.89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IMF 위기" 극복을 우리 모두 과거 일로 여기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증시전문가들은 경제여건과 기업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이유로 수급악화 및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불안감을 들고 있다.

따라서 투신권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은행권 합병구도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면 증시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투신 및 은행 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지금까지 무성했지만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정책제시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구조조정 여부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자금조달 통로 및 투자자들의 자산운용 창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상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평가가 결집돼 주가로 표출된다.

아무리 잘 생긴 신랑감이 있어도 그의 노후가 비참하다면 그에게 시집갈 신부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경제여건이 아무리 좋아도 앞으로의 전망이 어둡다고 판단되면 주가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정부정책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상실이다.

금융구조조정에 이미 사용된 자금의 규모를 정부는 공적자금 64조원으로 발표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공자금 26조원이 더해져 90조원으로 변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26조원은 공공자금이라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이를 잘했다고 칭찬할 국민은 없다.

공적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이미 사용한 규모마저 제대로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 소요액을 30조원이라고 발표하면서 믿어달라고 하면 투자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식시장에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정부보다 앞서 가는 시장의 발목을 잡거나 문제가 발생한 후에 뒷북만 치는 정책 당국이지만 여기에 정책집행의 투명성마저 결여돼 있다면 주식시장은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은행 및 기업 개혁의 순위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지만 정말 필요한 정부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난지 오래다.

정부의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은 투명성 측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급한 정책대안이 요구되더라도 당장 현안으로 대두되지 아니하면 미루어 놓고 보자는 식의 정책 대응이 만연하다면 현재의 주식시장 침체가 문제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미래조차도 존재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정책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미국의 예에서도 보듯이 경기가 과열하면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단기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이런 점은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금리 인상의 시기다.

같은 금리 인상이지만 시기에 따라 경제의 연착륙 또는 경착륙이 결정된다.

투신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이미 시장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과 같은 처지에까지 이르게 됐다.

불이 번진 후에 허둥대는 소방수보다 미리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하거나 불이 나더라도 이를 초기에 진압하는 소방수의 모습을 왜 우리는 정책당국자에서 찾아 볼 수 없을까.

위기는 아무런 기척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위기의 징후가 존재하고 있다.

기업의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넘어가 있을 뿐 부실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았다.

수익창출이 검증되지 않은 코스닥 기업들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코스닥시장의 급성장을 가져 왔지만 지금 거품은 걷히고 있다.

새한그룹에서 보듯이 기업부실은 또 발생하고 있다.

대우 부실은 그럭저럭 넘어 갔지만 또 다른 재벌이 무너지면 이를 감당할 여력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길은 오직 하나다.

정부는 소신을 가지고 과감한 자체개혁을 바탕으로 해 시장원리에 충실한 기업 및 금융개혁에 줄기차게 매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개혁 과정은 낱낱이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하고 국민의 감시 하에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시의 바닥 없는 추락, 외국자금의 이탈, 그리고 제2의 "IMF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한국역사에 IMF 사태가 오직 한번만 기록되기를 두손 모아 바랄 뿐이다.

leesb@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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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 코넬대 경영학 석사
<>뉴욕대 경영학 박사
<>행정고시 합격(1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