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소설 속에는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대신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다.

물론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지만 주변 인물들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서 주인공이 더 돋보이게 되고 작품의 극적인 효과를 훨씬 더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단 한 번도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변 인물들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고 독자는 훨씬 더 흥미를 느끼며 작품 속에 빠져들 수 있다.

국방부의 무기도입 과정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모든 언론매체가 린다 김이라는 한 사람의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2천2백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입되고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과정과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관련됐을 텐데도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진실을 알아낼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70년대의 정인숙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기가 바뀌었어도 우리 사회의 진실에 대한 청맹과니는 여전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린다 김 선글라스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에는 허탈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작전을 시도하며 인터뷰에 성공한 한 월간지의 기사를 읽어보게 된 것은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리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 주인공에게서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조금이나마 분통을 삭이고 싶어서였고 거꾸로 그 주인공을 통해서 주변 인물들을 상상해보자는 소설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기사를 읽고난 뒤 나는 린다 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당혹감을 느꼈다.

그녀는 너무나 당당하고 너무나 자신만만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무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그녀의 자신감에 비해 너무나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토로한 삶의 질곡마저도 내게는 빗나간 우월감으로 느껴졌고 결국 그토록 당당한 자신감은 그녀가 터득한 생존의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한 편의 소설,19세기 미국의 여류작가 윈즈로( Winslow )가 쓴 "고아 애니"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고아 애니는 고아가 아니다.

창백한 얼굴과 야윈 몸집,얌전한 태도 때문에 그녀는 얼핏 보았을 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그녀를 무시해버리지만 만나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여진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와 허약한 어머니,그리고 세 동생.

열네살부터 일터에 나갔으며 밤에는 학교를 다니는 고아 애니.

사람들은 애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도,많은 돈을 뜯겨도 아무도 그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여전히 선량하고 양순한 고아 애니로 생각한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과 얄팍한 동정심을 이용하며 가족들을 풍족하게 부양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 간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고아 애니로 불린다.

그 소설의 끝부분에서 애니는 말한다.

"나는 세상에서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무엇을 얻어야겠다고 노력한 거예요"

먼지를 뒤집어 쓰고 구석에 박혀있는 책을 끄집어 내서 다시 "고아 애니"를 읽다가 나는 고아 애니의 그 대사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고 고치고 싶었다.

내멋대로 그렇게 고친 대사를 다시 읽으며 나는 린다 김의 목소리로 듣는 착각을 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자기의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얻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때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애니는 고아로 보이는 외모와 태도를 생존의 방법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이 우리를 세상에 내보낼 때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와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달란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달란트는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그것을 착각하는 사람의 생존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아가 그 사회와 국가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든다.

한 사람의 삶에는 주인공인 자신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수많은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인생이라는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편리한 방법이 아닌 가장 옳은 방법으로 생존해야하고,내 생존 앞에 우리의 공존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belltow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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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9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장편 "기억의 장례""프라우드 메리를 기억하는가" 단편집 "귀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