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만 떠돌던 소위 제2 경제위기설이 우리나라 최대 기업집단인 현대그룹의 자금난으로까지 구체화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지극히 우려할 만한 사태 전개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채권시장의 마비,게다가 미국 금리인상등 대외여건의 악화가 제2 위기설과 함께 현대그룹 자금난을 촉발하고 있는 원인들이라고 보지만 지금으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수습하는 것이 중요할 뿐 선후를 따지고 명분을 다투면서 논쟁으로 시간을 끌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경영권 분쟁이 외부에까지 노출될 정도로 낙후된 기업지배구조를 갖고있는데다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현대 측이 제공한 신뢰상실의 원인이었다면 자금시장의 불균형,금융 기관들의 근시안적 이기주의등 금융정책상의 다양한 실패들이 시장에서 차곡차곡 누적되어왔던 것도 사소한 부스럼을 악성종양으로 키우고 있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떻든 정부가 몇차례씩 서둘러 경제장관 회의를 가진 끝에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당국자들이 문제의 본질에서부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현대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자금난에 봉착해있는 것은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나 영업실적,그리고 나날의 자금운용 규모 등에 비기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외환은행등 거래은행들이 총액 3천억원대의 당좌자금 등을 긴급히 지원키로 했다지만 현대그룹 상장사들의 1.4분기 당기이익이 4천억원,매출액이 24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일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채권시장이 이미 수개월째 마비상태인데다 장단기 금리차가 두배까지 벌어지면서 단기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져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극히 소액의 자금으로도 초대형 기업이 휘청거리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하겠다.

금융기관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려는 매우 위험한 최근의 경향이 방치된다면 부채비율 2백%가 아니라 1백%를 밑도는 알짜배기 기업이라 한들 견뎌낼 재간이 없지 않겠는가.

바로 그런 점에서 정부가 투신사에 비과세 상품을 허용하는등 자금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긴급대책에 착수하는데서부터 이번 사태의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은 적절한 접근 방식이라고 본다.

현대그룹 역시 "시장이 현대를 신뢰할 수 있도록"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이번에는 분명히 보여주기 바란다.

위기 관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