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제는 시장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촌음을 다퉜다.

설마했던 현대의 자금문제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지난 26일 오전.

현대건설이 외환은행에서 당좌대출한도를 5백억원 더 받고 정몽헌 회장이 김경림 은행장을 찾아갔다는 사실이 "현대의 자금난"으로 증폭되면서 주가를 42포인트 끌어내렸다.

현대 못지않게 정부도 깜짝 놀랐다.

경제위기론에 시달렸던 경제장관들은 "대우"를 떠올리는 투자자들을 하루빨리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즉각 은행을 통해 현대건설에 자금수혈을 시작하면서 차제에 현대문제의 뿌리를 고치기로 하고 그날 저녁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의 사퇴를 간접적으로 종용했다.

금감위의 요구는 27일 현대증권 주총에서 이 회장이 연임됨으로써 묵살됐다.

금감위는 실망했다.

증시가 문을 닫은 토요일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금감위는 즉각 오후 5시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했다.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장관 외환은행장까지 참석하는 이례적인 회의였다.

곧바로 고강도 자구책을 현대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시한은 29일 증시가 열리기 전까지로 못을 박았다.

현대는 장고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할 만큼 했는데 무엇을 더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28일 일요일.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외환은행과 현대와의 핫라인 외엔 일체 외부연락을 끊었다.

이 위원장은 수행비서도 제쳐놓고 오전부터 진동수 상임위원, 서근우 제2심의관 등 핵심 실무진만 대동하고 시내 모처에서 기다렸다.

현대에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외부 관계자의 전화만 걸려왔다.

바로 그 시간, 현대 관계자들은 모처에 모여 자구책을 논의했다.

지난 27일 오전 일본으로 떠난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받은 지침을 토대로 다각적인 방안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외환은행과 막판조율을 했다.

오후 6시께 현대가 7시에 계동 사옥에서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외환은행이 전했다.

현대는 오후8시 ''현대의 입장''이란 자구계획을 내놓았다.

이에대해 정부와 채권단은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당초 예상과 달리 오후10시20분께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정부와 채권단도 현대 못지않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현대의 발표에 만족했다기보다는 시장안정을 위해 수용 입장으로 선회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