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75) 제1부 : 1997년 가을 <7>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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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상화
최형식은 혼자 사는 15평 정도의 서민 아파트 문 앞에 섰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낼 때 영수증이 돈에 딸려나왔다.
그는 무슨 영수증인가 하고 복도등의 불빛에 비쳐보았다.
백화점 점원이 이정숙에게 주라고 한 영수증이었다.
오백팔십만 원이 기입되어 있었다.
한 달 죽어라고 일한 대가로 자신이 받는 15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떠올리면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
황무석의 부탁이라 당연히 하긴 해야겠지만 하루종일 여자가 모는 차 꽁무니를,그것도 별 소득 없이 따라다닌 사실이 부끄러웠다.
책장 위에 있는 사진에 그의 시선이 갔다.
5년 전 죽은 아내와 몇 달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가 현재 최전방에서 복무중인 외아들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모자에게 크게 수치스러운 일을 한 듯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옴을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해요"
아내가 5년 전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미소 속에 그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미안해,당신을 너무 고생만 시켰어"
그가 복도를 지나는 이동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동혁이를 잘 키워주세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당신은 회복될 수 있어"
"아니에요. 제가 알아요. 지금 수술실로 들어가면 마지막이 될 거예요..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잠시 후 아내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동혁이가 결혼할 때까지는 재혼하지 말아주세요"
"아니야.영원히 재혼하지 않을 거야"
그가 무의식중에 한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니고 아내는 수술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회상에서 깨어나면서 최형식은 아내의 체취가 묻어 있는 아파트 안을 돌아보았다.
벽 쪽으로 허름한 소파가 놓여 있고 창 쪽으로 텔레비전 세트가 놓여 있으며,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창문 뒤쪽에 조그마한 베란다가 그의 시야에 잡혔다.
그곳에서 화분을 정성스럽게 가꾸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벽만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내 생각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내와 같이 보낸 13년의 세월 동안 그는 대부분 감옥에 있든지 법망을 피해 다니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때는 살아 있는 아내가 힘이 되어주었고,그가 저지른 범법행위가 숭고한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내가 없는 지금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북에 계신 아버지와 군에 가 있는 아들뿐이었다.
"여보,당신도 이제 가정을 돌볼 때가 되지 않았어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결혼하던 해 이곳 서민 아파트로 이사 온 날 저녁 아내가 한 말이 들려왔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가정을 돌보는 일이고 나라를 돌보는 일이야"
"지난 8개월 동안 당신이 집에서 잔 날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
"열흘도 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그 말을 듣고 놀랐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형식은 혼자 사는 15평 정도의 서민 아파트 문 앞에 섰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낼 때 영수증이 돈에 딸려나왔다.
그는 무슨 영수증인가 하고 복도등의 불빛에 비쳐보았다.
백화점 점원이 이정숙에게 주라고 한 영수증이었다.
오백팔십만 원이 기입되어 있었다.
한 달 죽어라고 일한 대가로 자신이 받는 15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떠올리면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
황무석의 부탁이라 당연히 하긴 해야겠지만 하루종일 여자가 모는 차 꽁무니를,그것도 별 소득 없이 따라다닌 사실이 부끄러웠다.
책장 위에 있는 사진에 그의 시선이 갔다.
5년 전 죽은 아내와 몇 달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가 현재 최전방에서 복무중인 외아들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모자에게 크게 수치스러운 일을 한 듯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옴을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해요"
아내가 5년 전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미소 속에 그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미안해,당신을 너무 고생만 시켰어"
그가 복도를 지나는 이동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동혁이를 잘 키워주세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당신은 회복될 수 있어"
"아니에요. 제가 알아요. 지금 수술실로 들어가면 마지막이 될 거예요..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잠시 후 아내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동혁이가 결혼할 때까지는 재혼하지 말아주세요"
"아니야.영원히 재혼하지 않을 거야"
그가 무의식중에 한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니고 아내는 수술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회상에서 깨어나면서 최형식은 아내의 체취가 묻어 있는 아파트 안을 돌아보았다.
벽 쪽으로 허름한 소파가 놓여 있고 창 쪽으로 텔레비전 세트가 놓여 있으며,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창문 뒤쪽에 조그마한 베란다가 그의 시야에 잡혔다.
그곳에서 화분을 정성스럽게 가꾸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벽만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내 생각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내와 같이 보낸 13년의 세월 동안 그는 대부분 감옥에 있든지 법망을 피해 다니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때는 살아 있는 아내가 힘이 되어주었고,그가 저지른 범법행위가 숭고한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내가 없는 지금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북에 계신 아버지와 군에 가 있는 아들뿐이었다.
"여보,당신도 이제 가정을 돌볼 때가 되지 않았어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결혼하던 해 이곳 서민 아파트로 이사 온 날 저녁 아내가 한 말이 들려왔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가정을 돌보는 일이고 나라를 돌보는 일이야"
"지난 8개월 동안 당신이 집에서 잔 날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
"열흘도 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그 말을 듣고 놀랐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