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란 제품을 파는게 아니라 인격을 파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고객과 신뢰만 제대로 쌓을 수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에요"

노란 머리,거침없는 말투,서글서글한 성격...

KCC정보통신의 김혜원(31) 대리는 IT 업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영업사원 출신이다.

남자도 하기 어려운 영업사원을 무려 5년 동안이나 했다.

국민대 정보관리학과를 졸업한 김 대리의 첫 직업은 프로그래머였다.

그러나 그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지시받은 일만 하는데 곧 싫증이 났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호흡하며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6년 회사를 옮기면서 자원한 분야가 영업.

사람들과 만난다는 점,그리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그를 남자들도 기피하는 영업분야로 이끌었다.

그는 랜컴이라는 소기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전자결제시스템의 일종인 키플로( Keyflow )라는 제품의 판매를 담당했다.

"처음에 제가 고객사를 방문하면 담당자가 꼭 제 뒤를 한번 쳐다봐요. 그리고는 혼자 오셨나요 하고 묻죠"

김 대리의 말처럼 IT 업계의 여성 영업사원은 드문 존재다.

그도 영업사원 활동을 하면서 단 한번도 여자 영업사원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함께 술을 마시면 상대방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여자가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선입견도 있고요. 그래서 맨처음에 제 존재를 제대로 알리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나 김 대리는 활달한 성격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런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술자리에서는 일절 회사일을 얘기하지 않고 고객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취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꼬박 밤을 새우며 제품에 대한 공부를 했다.

"IT 영업사원은 준컨설턴트 수준이 돼야 합니다. 고객이 기술적인 질문을 할 때마다 엔지니어를 데리고 가서 설명을 부탁하는 건 난센스라고 봐요"

이런 노력 때문에 김 대리는 IT 업계에서 영업사원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고객사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찾는 것는 엔지니어가 아닌 김 대리였다.

그리고 그는 고객의 기대대로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해줬다.

그는 지난해 5월 KCC정보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A4용지 한 페이지나 되는 입사지원서에 쓴 글은 단 한 문장.

"큰 물에서 놀고 싶다"였다.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KCC정보통신에서도 여성 영업사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최근 김 대리는 기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을 다 팔아먹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고객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들고요. 그래서 기조실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을 폭넓게 배워보기로 했죠 "

그는 영업사원으로 생활면서 뿌듯한 두가지 일을 경험했다.

하나는 올해 KCC정보통신이 자신을 이을 2명의 여성 영업사원을 뽑았다는 것.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MS가 주최한 어느 모임에서 다른 회사 부장이 그에게 건넨 말이었다.

"나도 이제는 여자 영업사원을 뽑고 싶어.내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김 대리의 영향이 가장 커"

김태완 기자 twkim@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