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결국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행복을 주고 추구하는 자의 가족에게는 불행을,그리고 추구하는 자의 자식에게는 불공평함을 남겨주는가?

아버지도 이데올로기를 추구했을 때는 행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복에 대한 대가로 집안은 몰락했고 어머니는 고통을 받았으며 자식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이데올로기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추구한 이데올로기가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었나? 최형식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부터,그러니까 그가 45세가 지나면서부터 자신에게 자주 던진 질문이었다.

나이 때문인지 외아들이 벌써 성년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건 그 자신도 몰랐다.

어머니의 가슴에 새겨놓은 슬픔,아내가 가슴속에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불안감,감옥생활의 혹독함...

이데올로기가 남긴 이러한 슬픔과 불안감은 어머니와 아내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감옥생활의 혹독함은 나에게서 무엇을 앗아갔을까?

자신에게는 그 무엇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듯했다.

증오심?

최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가진 자,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를 향한 증오심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다음 순간 최형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가슴속 깊이 품고 있던 증오심은 아버지가 북한에 살아계신다는 소식과 중국에서 아버지를 만나도록 주선하겠다는 김인순의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 사라졌던 것이다.

그가 가슴 깊이 간직했던 증오심은 관용으로 대치되었다고 그는 확신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있어 그가 겪은 모든 시련을 일순간 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그가 살아온 46년 간의 인생이 마치 현실이 아닌 연극중의 일부분으로 느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고향에서 일본 대학으로 유학한 첫번째 학생으로 귀국해서는 경성에 있는 좋은 고등학교의 직장을 마다하고 고향의 유일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를 택하였으며,흉년이 들었을 때 할아버지의 노여움을 사면서도 소작인들을 도와준 미담이 항상 따라다니는 이상주의자이셨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면서 무슨 연유로 좌익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가문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가 과거가 아닌 현실로 되돌아온 것은 아버지가 북한에 생존해 계신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어머니가 말씀하신 모든 것이,한쪽 귀로 듣고 무심히 흘려보냈던 과거가 한순간에 현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최형식은 그 자신도 부농 선비 집안의 자손으로 이상주의자여야 함을 깨달았다.

과거가 현실과 다시 매듭을 맺음으로써 연속성을 유지하게 되고 그 사이에 있었던 가난한 노동자로서의 슬픈 기억은 한 막의 연극으로 흘려버릴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가슴에서 증오심을 지운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와의 만남은 그에게 있어 새롭고 참된,원래 그가 살았어야 할 인생의 탄생이었다.

그것이 그가 아버지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이유였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다는 현실을 외가 쪽 먼 삼촌 뻘 되는 황무석을 포함하여 일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버지와의 만남을 말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